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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2. 2022

금감원과 남부지검 10층, 주가조작 혐의를 받다

당한 사람은 저예요!

금융감독원과 중앙지검 출석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줄 알았다.

대형 경제사범이나 가는 곳 아닌가?


사실 나는 당시에는 남편이 중앙지검이나 금감원에 출석하러 서울에 가는 줄도 몰랐다. 남편은 내가 걱정할까 봐 다른 얘기를 둘러대고 갔기 때문에 나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만약 알았다면 나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쌍둥이를 돌볼 수도 없었을 것이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를 어두움 속으로 몰아넣었겠지..


남편은 작은 사기라도 칠 위인이 아니다. 바보처럼 착해빠지고 사리사욕 따지지 않는 것으로 치자면 아마 세계 상위권에 들 사람이다. 대학 때도 교회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을 자기 차취방에 무상으로 1년 이상 데리고 살면서 같이 먹고 잔 사람이다. 이뿐 만이 아니라 바보처럼 남을 위해 해주는 게 많아 그게 오히려 불만이었던 나다.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한 사건의 사기의 표적이 된 것도 그런 남편의 순박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그때 서른을 갓 넘기면서 또래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지금은 누구나 주식을 하지만 10년 전에는 주식에 대한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았고, 직접 투자보다는 위임 투자를 많이 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겨우 하는 수준이었다. 남편은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을 별로 하지 않던 20대 시절부터 주식을 시작하였다. 가끔 증권사에서 하는 모의투자 경연대회에서도 순위권에 들어 상품권을 받기도 하고, 공부는 그리 잘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이 쪽에서는 신기한 능력을 발휘했다.




남편의 혐의는 티브이에나 나올법한 '주가조작'혐의. 

작은 중소기업의 주가를 올렸다는 혐의다. 그런데 그렇게 하도록 뒤에서 조정 세력이 있었고 오빠는 일반 개미로서 그냥 그 주식을 계속 산 것뿐인데 금액이 많아 계속 사다 보니 주가가 올라간 것이다. 어느 정도 사기꾼들의 기준 주가가 되니 그들을 모두 팔고 도망을 갔고, 매수한 금액이 많았던 오빠가 사건의 주모자로 몰리게 된 것이다.


금감원에 도착하니 사건의 또 다른 주모자로 생각되는, 주가조작의 대상이 된 그 회사 대표가 와 있었다. 그 회사 대표는 '해외사망설'이 나돈 주된 또 한 명의 범인과 주가를 올려놓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던 모양이었다. 그 회사 대표는 든든한 변호사를 옆에 두고 꽤나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의 이름이 불리니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들이 죄를 뒤집어 씌우려던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 놀란 모양이다. 남편은 너무 분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변호사 없이 혈혈단신으로 한쪽 팔에 기브스까지 한 힘없는 남편은 영락없이 덤터기 씌울 분위기다.  


곧이어 남편의 이름이 호명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금감원 위원들은 처음부터 남편을 범죄인 취급을 하며 유도신문을 했고, 남편이 결백을 증명하듯 얘기하니 그다음으로 두꺼운 서류 뭉치를 넘기며 남편의 모든 거래내역을 일일이 들추어보았다. 위원들은 아주 자세한 거래내역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면  '2010년 9시 30분 30초에 몇 주를 얼마에 사고 얼마에 팔았는지..'등  모든 거래내역을 샅샅이 뒤지며 특이점을 찾고 있었다.


오전에 시작한 심문은 점심을 먹고 이어졌고 4시간 정도 걸렸다.

오래도록 이어진 심문 후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최후변론 시간이 주어졌다. 위원들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남편은 침착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외쳤다. 그때 마침 배달을 하던 중 음식물 쓰레기차와 부딪혀 팔에 깁스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남편은 기브스를 한 팔을 들어 올리고 "내가 사기를 쳤다면 이렇게 배달하면서 넘어져 깁스를 하고,  처자식을 단칸방에 넣어놓고 살 수가 있겠냐고~! 지지리도 힘들게 살고 나도 큰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마지막에는 위원들이 사건과 관계가 없는 이전의 모든 거래내역까지 검토하고는 혀끝을 차며, '이런 사건에 연루되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이 아쉽다'라고 얘기를 했다.


생각해보면 무슨 드라마 같은 장면이다.

 

어찌 됐건 요즘처럼 억울하게 은팔찌 끼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 억울하게 옥살이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부분 금감원까지 불려 가면 안 좋게 풀릴 일이 많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중앙지검까지 다녀오며 일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이렇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도 이상한 이유를 대며 서울을 빈번히 오갔기에, 수상함을 눈치챈 나의 촉이 발동되어 남편을 금감원 위원보다 더 치밀하고 괴롭게? 취조한 끝에 알게 된 사실이다.




순둥이였던 남편은 점점 책임감 있고 생각이 깊어지며, 강단 있는 사람으로 변모해 나갔다. 신혼초에는 전구도 제대로 못 갈았던 남편이 이제는 뭐든 닥치면 받아들이고 성실히 해 나갔다. 한 번도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빚이 많아져서 도망가고 싶을 법도 한데 자기는 무슨 자신감에선지 몇 십억이나 되는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채무자와도 연락하며 지낸다. 한동안 연예인 이상민 얘기에 공감을 많이 하곤 하였다.


삶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남편의 이런 책임감과 성실함을 믿고 살아온 지 올해 결혼 10주년이 되었다. 빚은 아직도 산더미인데 남편은 여전히 뭔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남편은 신통방통하게 건축사업에 발을 들였는데 제법 영업을 잘하는 듯하다. 그에 걸맞게 나도 남편이 어떤 일을 시작하면 서류 작업이나 세무적인 일을 발 빠르게 알아봐서 처리를 하곤 한다. 어떨 때면 이 정도면 같이 사기를 쳐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어려움은 우리를 단단하게 훈련시킨 듯하다. 예전에 돈으로 해결할 일들을 이제는 모두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니 자연스레 살아남는 법을 배운 듯하다.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는 고리타분한 얘기의 뜻을 체감한다. 정말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 어느새 나도 꼰대 대열에 들어선 것이지 의심스럽지만. 고전적인 말들이 아직까지는 여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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