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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Jul 12. 2022

돈 잘 버는 남편, 하루아침에 신혼집을 날리다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버렸다

집 값이 많이 올랐다. 지금은 월세에 살고 있지만 예전에는 버젓한 내 집이 있었다. 얼마 전에 그 집 가격을 검색해 보니, 신혼집으로 샀던 우리의 첫 아파트는 2배가 넘어 있었다. 그곳은 광역시의 도심 중 하나로 지하철역 3분 거리, 백화점 도보로 10분 거리, 앞에는 멀티 플랙스 영화관과 대형마트가 있고, 초등학교도 도보로 통학이 가능하며, 지금은 스세권이 된 그야말로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 있던 아파트를 우리 남편님께서 은행에 담보를 잡아 날려먹었다.


사업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망하고 담보 잡힌 아파트가 넘어가는 날, 너무나 급박하게 진행된 상황 속에서 이제 태어난 지 100일 된 쌍둥이 육아로 나는 충격에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쌍둥이 육아는 잘 시간도 없을 만큼 막노동에 가까운 패턴으로 쉴 틈 없이 돌아갔기에 나는 충격을 받아 몸져누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에는 돈을 너무 잘 벌어왔던 남편인지라 금방 이사 갔다가 다시 아파트로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 100일 된 아이들이 지금은 9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잘 살았던 기억이 이제 내 기억이 아닌 양 힘들게 살아온 날들이 현저하게 많아진 지금, 그런 때가 있었나 싶기다 하다.


펀드 관련된 일을 했기에 남편은 하루에도 몇 천을 버는 사람이었다. 멋모르는 어릴 때라 명품 욕심도 없었기에 명품을 많이 사지는 않았지만 사고 싶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날들이었다. 기분이 다운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백화점에 가서 쇼핑으로 내 안의 결핍을 채우려 하였다.  

'겔 병원.' 

그때 내가 자주 찾던 병원이다. 머리가 아프고 답답할 때 겔***백화점에 가면 동공이 확장되고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뇌가 최적화를 이루며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아픈 증세가 보이거나 급히 안정화가 필요할 때 '겔 병원에 가자'며 실패가 없는 최고의 처방을 해주곤 했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 사람들과 내 삶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은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로 자신만만하게 생각했기에 그런 생각의 자리는 머릿속에 남겨두지도 않았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경제적 문제로 어려워해도 안타까워하고 눈물도 났지만 그 자리에서 일 뿐, 그곳을 빠져나오면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나만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겪게 된 지금의 나.

누가 어려운 얘기를 하면 내가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고, 비참해 봤기에 나의 기억들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저리다. 안타까운 마음에 집에 와서 혼자 울기도 한다. 당해봐야 그 어려움을 아는 것이다.


돈 없는 서러움.. 정말 당해봐야 안다.


우리가 이사 간 곳은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위치의 5층 투룸이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축이었기에 나는 쌍둥이들을 뒤로 아기띠 해서 업고, 앞으로 안고 하여 오르내리곤 하였다. 투룸이긴 하지만 한 방은 짐을 놓았기에 실제는 원룸과 부엌 딸린 작은 주방 공간이 있을 뿐이다.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 한대가 힘없이 안방에 걸려있었는데 한여름에는 아무리 온도를 내려놓아도 불볕더위를 피할 수 없었다. 꼭대기층에 차양도 없어서 더 그런 듯하다. 

그곳에서 우리 쌍둥이들은 100일이 지나 돌을 보내고 나중에 어린이집도 보냈다. 남편은 밤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잡을 뛰며 살고, 틈틈이 채무자들에게 마음고생도 당하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가끔 근처 대형마트를 갈 때도 혹시나 채무자들이 보지나 않을까, 그냥 장보는 것인데 이 모습조차 행여 

'살만해 보일까' 조마조마하며 카트를 끌다가도 이내 불안한 마음에 신속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많았다. 마트뿐만이 아니다. 커피숍에 가도,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근처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와도 이와 같은 식의 걱정과 조마조마함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빚을 진다는 것.

너무 잘 살아 보여서도 안되고, 너무 편안해 보여서도 안된다.


하루아침에 삶이 드라마처럼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계속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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