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증금 100만 원, 월세 10만 원
남의 집을 공짜로 사는 방법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0만 원.
형식상의 월세 형태를 갖추기 위해 받은 돈이다. 계약서도 작성했다. 처음 임대를 놓았고 부동산도 끼지 않았기에 치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계약서다. 우리는 다만 집을 비워두지 않고 집에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들였기 때문에 임대차계약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간 잊고 살았다. 아버지를 닮은 그에게 집을 맡긴 채.
시간이 조금 흐르고 동네 사람들에게 집 소식을 건네 들었다. 집 마당에 무엇인가 물건들이 쌓이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그는 2년의 계약기간에 이어 2년을 더 살고 사라졌다.
쓰레기인지 짐인지 온갖 물건들을 집안 가득 남기고.
그의 물건들은 방 안 구석구석, 마당이며 텃밭이며 보이는 모든 곳에 쌓여 있었다. 가족들은 경악했고 그에게 연락을 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본채 앞으로 마당이 있고 옆으로 동물을 키우는 막사와 텃밭이 있었기에 집의 크기는 작은 편은 아니었다. 그 모든 공간들은 온갖 물건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옮겨진 것일까, 어디서 이 많은 물건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나는 티브이에서 본 ‘쓰레기 집’을 떠올렸다. 문을 열면 쏟아질 듯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정신적 문제로 인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온갖 물건들을 쌓아놓은 집을.
그러나 이것은 그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이것은 의도를 가지고 정성을 들여 정교하고 치밀하게 쌓아 올린 피라미드와도 같았다. 혹은 빈틈에 알맞게 꽂아 넣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테트리스 게임과 더 비슷할지도.
물건을 쌓아둔 채 종적을 감춘 그는 우리의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다. 법상 세입자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치우면 안 된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참 난감한 일이다.
사람은 나갔으나 물건은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그에게 전화와 문자를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물건을 치워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역시나 답이 없다. 우리는 법적절차를 위해 내용증명을 보내기로 했다.
가족들은 ‘무엇인가 쓰는 일’은 나에게 담당시켰다. 그렇기에 나는 어른이 되기 전부터 여러 가지 분쟁에 관한 서류를 작성해 보았다.
최초의 일은 경찰서에 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한 일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동생이란 자, 즉 작은아버지가 어머니의 식당에 와서 형수에게 쌍욕과 행패를 부려 손님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선사해 준 일에 대해서도 경찰서를 찾았다.
부모님의 이혼사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의 적절성’에 관한 탄원서 비슷한 것도 써내었고, 제법 잘 썼다. 내용증명도 몇 번 썼고, 노동청에 고발도 해보았다. 모두 원하는 데로 이루어졌다.
경찰서에 신고한 내용으로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빌어 그때그때마다 일을 무마시켰고, 작은아버지는 모욕죄로 벌금을 받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의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에게는 벌금을 때려주었다.
몇 해 전 우리 땅을 무단으로 사용하던 양계장 주인에게는 내용증명을 보내어 정당한 대가를 받고 땅을 빌려 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내용증명이 필요한 때이다. 양계장 주인에게 땅을 빌려준데 이어 매도까지 하였으니 이번에도 내용증명이 우리의 구원투수가 돼 주길 바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주소지 불명’
임대차 계약서에 쓰여 있던 그의 주소는 ‘주소지 불명’으로 내용증명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서 집을 망가뜨리고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이 상황.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우리가 아버지를 잊지 않도록 여전히 고통을 주는 것일까?
이 집은 여전히 나에게 고통의 장소임에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