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를 닮은 사람
남의 집을 공짜로 사는 방법
그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다. 어린 내가 살았던 곳, ‘대학’이라는 집을 떠날 구실이 생기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행복한 기억이 많지 않아 집에 대한 애착은 크지 않다. 나를 시작으로 동생들도 때가 되어 모두 그곳을 떠났고, 어머니도 떠났다. 아버지 홀로 사셨고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도 그곳에 있었다.
어두운 안방, 작고 낮은 밥상, 그 옆에 쓰러져 있는 딱딱한 아버지의 몸, 얼굴 근처에 끈적끈적하게 펼쳐 있는 피.
아버지는 홀로 저녁상을 앞에 두시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그것이 그 집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50대 초반의 나이. 세상을 등지기엔 이른 나이라 할 수도.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인 40대 초반에 이미 복수가 차올라 병원에 실려 오길 몇 번, 피를 토하길 몇 번. 의사로부터 간경화로 인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에 비해 꽤나 오래 사신 셈이다.
그런 기억들로, 생각해 보면 웃음보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나의 집. 분명히 웃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흐르는 두려움과 불안함. 어머니의 뽀얗고 부드러운 살결에든 멍자국, 두려움에 떠는 세 명의 어린아이들.
나의 그 두려움들은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증오와 투쟁으로 바뀌었고 아버지를 경멸했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심장을 차갑게 얼렸다. 아버지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그에게 배운 욕들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내 마음을 함부로 표출하지 않았고 밖에 집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학교에 나가면 좋은 집에서 자란 모범생처럼 행동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파괴되어 버린 ‘존중’의 의미를, 나 스스로 지켜 내기 위해 지적으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항상 책상에 앉아 있었고 무엇인가를 읽었고 학교에서 반장을 했고 상을 타왔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조금은 조심스레 대하려는 듯이 보였다.
나는 아버지보다 똑똑하고 고귀한 사람임을 나 스스로 증명해 보인 탓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
깡 마른 체격에 큰 키, 까만 얼굴,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모습까지, 아버지를 꼭 닮은 사람이.
어머니는 마치 아버지가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며, 아버지와 꼭 닮은 그에게 집을 쉽게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