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트랙터와 용달차
남의 집을 공짜로 사는 방법
얼마 후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
그 사람은 휴가라도 온 듯 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단다.
설마, 정말 그냥 며칠 쉬러 왔다고?
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 회로가 연결되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일부러 짐을 잔뜩 풀어놓고 치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기생충처럼 그 집에 기생해 산다. 정말 하다 하다 못 살 때까지. 나는 온몸의 살갗과 솜털들이 하늘로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은 보통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는 심지어 누군가와 함께 왔다. 남편이 그에게 전화를 할 당시 그는 당진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 만난, 자신과 같이 일정한 거처가 없는 새로 사귄 친구를 데려온 것인지도. 그는 당진에서의 일이 끝나고 자신의 짐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신이 돌아오기 위해,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게 하기 위해. 그 짐들은 그런 구실을 하였다.
그는 펜션이라도 온 듯 음식까지 싸와서 냉장고에 먹을 것들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낮에는 낮잠을 잤다.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그를 다그치고 감시할 시간이 없었다. 출근하기 전 아침에 잠깐 와서 치워달라고 애원과 다그침을 번갈아 하는 수밖에. 그러면 그는 그 순간 잠깐 치우는 척 움직인다.
그러나 그녀가 점심도 거른 채 점심시간을 이용해 와서 보면 그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이 가지고 온 용달차로 중간에 어딘가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녀는 화를 냈고, 잠시 후 그의 동료인지 가족인지 누군가는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가지고 있던 트랙터로 그 용달차를 막아섰다. 그것은 그 사람이 훌쩍 떠나버릴 것을 막기 위한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어머니는 새아버지를 만났으나 새아버지는 이런 일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친아버지는 불물을 가리지 않고 멱살을 잡는 유형이라면 새아버지는 화를 내지도, 누군가의 멱살을 잡지도 않는다.
이런 느긋한 점은 배우자에게 많은 부분 장점으로 작용되나 지금과 같은 때는 친아버지의 찰진 멱살잡이 솜씨가 몹시도 그리워진다.
덕분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녀는 홀로 세상과 맞서야 했다. 새아버지는 멱살 잡는 능력은 없었으나 트랙터 운전 솜씨는 매우 뛰어났다. 그녀의 요청에 따라 그 장기를 이용해 트랙터를 용달차 앞에 아주 바싹 주차해 주었다.
용달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그는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의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오전에 잠근 방문은 오후까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문을 잠그고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녀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출동했고 방문을 두드리며 경찰임을 알렸다.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는 경찰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자신의 차를 막아서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만들었다고. 경찰에 의해 트랙터는 다시 용달차에게 길을 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