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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Oct 19. 2024

빨래 너는 직업

1. 살림과의 대화

장마철, 하늘은 웃었다 울었다,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 통돌이군과 함께 사는 나는 하늘의 감정변화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하늘이 잠시 기분이 좋다. 요 며칠 사이 일감이 없어 게을러진 통돌이군은 이제 본업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 쉴 새 없이 돌릴 생각이다. 게으름의 시간은 끝이다.       


밀린 빨래는 상당하여 헹거에 널 자리가 부족하다. 양말은 메인 옷들 사이 틈새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눈치를 보아 가며 한 짝씩 겨우 자리를 차지했다. 헹거의 빨래 밀도가 너무 높다. 장마철의 헹거자리는 뉴욕이나 홍콩의 땅값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제대로 마를까 살짝 걱정된다.          


타 다다닥.


잠시 숨을 돌리고 앉았는데 창문을 때리며 소나기가 내리다. 


다른 생각보다 먼저 떠오른 건 빨래!      


베란다로 향한다. 활짝 열어둔 베란다 창으로 비가 무자비하게 들이치고 있다. 하늘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조증이 끝나고 우울모드로 강력하게 들어간 것이지 비의 양이 심상치 않다.      


서둘러 창을 닫는다.     


양팔 가득 빨래를 껴안아 거실로 옮기는 것을 두 번 반복한다. 빨래 밀도가 상당했기에 두 번에 걸쳐 옮겨야 한다. 자리를 계산해 가며 정성껏 빨래를 넌 것이 무색해진다. 빨래를 거실 바닥에 던져두고는 다시 베란다로 향한다. 헹거 날개를 접어서 거실로 가져온다     


거실. 

헹거 날개를 펼쳐서 30분 전에 했던 대로 다시 빨래를 넌다. 자리가 부족하지 않도록 계산하여 꼼꼼히 자리를 메꾼다.     


이른 아침 수건빨래 1회(날씨와 상관없이 수건이 없어서 빨아야 했다), 덜 마른 빨래는 미니헹거에 재배치하여 널기 1회, 해가 조금 비치자 안심하고 신난 마음에 본격적인 빨래로 엄청난 양의 빨래 1회, 비가 와서 거실로 옮겨 너는 작업 1회. 


4번 정도 빨래를 널고 있으니 빨래만을 전담하는 빨래 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된 듯하다.     


방안에 에어컨 온도를 낮추고 선풍기를 빨래 쪽으로 하여 회전시킨다.     


아이들은 밖으로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남편도 출타 중. 나 홀로 빨래와 씨름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한쪽에 걷어놓은 빨래를 갠다. 빨래를 서랍에 정리하고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비는 여전히 다다닥 창문을 때리며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다. 방 안에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빗소리와 선풍기 소리의 합주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어느 연주보다 더 마음이 평화롭다. 빨래가 선풍기바람에 나부낀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빨래가 잘 말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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