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디김 Oct 17. 2024

불안해서 청소합니다

1. 살림과의 대화

매일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한다. 청결해서라기보다 불안증이 많아서다. 그리고 반드시 물걸레를 장착하여 청소기를 돌려야 마음이 놓인다. 


이러한 매일의 루틴은 규칙적인 일상에서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주말과 같이 불규칙한 일정이 생겨 청소기를 돌리지 못하는 날에는 폐나 심장이나 그것이 어떤 내장기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쪽이 살짝 간질간질하는 것 같다.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리 한쪽 구석에서는 오늘 물걸레 청소기를 못 돌렸는데 어쩌지?, 하고 잔잔하게 생각의 끈을 이어 가고 있다.

        

기분이 우울한 날, 집안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가장 효과가 빠른 달디단 음식을 먹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청소보다 그런 것들을 선택한 날에는 잠자리에 들 때 우울함과 후회가 풍선처럼 커졌다. 작은 물풍선이 열기구만큼 커진 것이다. 하루의 결산이 그리 좋지 않다. 기분은 해소되지 않고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다.       


대신 어김없이 청소를 하고 집안의 공기가 바뀌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이러한 청소는 나의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청소기를 돌리며 환기를 시키고 일정 부분 정화가 되었다면 나는 더 추진력을 내어 정밀한 청소를 시작한다. 


평소에 청소기가 닿지 않는 곳, 가구의 뒤편이나 아래쪽을 청소한다. 가벼운 가구라면 옮기고 청소를 한다. 구석구석 먼지를 잡아내겠다는 심정으로. 집요하게 먼지들을 쫒는다. 


이럴 때는 청소기의 물걸레가 아닌 직접 손으로 걸레를 짜서 무릎을 꿇고 수도승의 자세로 임한다. 유연성을 발휘해 허리를 구부리고 팔을 곧게 뻗어 구석구석을 닦아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똑같지만 분명 구석의 먼지는 사라져 있다. 마음이 놓인다. 마음 한쪽을 무겁게 했던 우울의 요소라든지 고민거리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이 먼지를 몰아낸 것처럼 걱정거리나 자신감 없는 모습들도 내몰 수 있을 것 같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실시한다. 분명 예전보다 쓰레기를 줄이고 싶은 마음은 커졌고 노력 또한 하고 있건만 쓰레기는 하루로 쉬지 않고 열심히 나온다. 하루도 쉬지 않고 오는 택배아저씨와 깊은 관련이 있겠다. 


필요한 식재료나 생필품은 필요할 때마다 근처 슈퍼마켓에서 포장 없이 에코백에 들고 오는 방법이 있겠지만 역시 시간이 소요된다. 육체는 걷는 대신 하던 대로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고 싶어 한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의 몸은 다시 불편한 삶으로 가는 것에 대해 뭐 하러 불편을 사서 하느냐, 바보 아니냐, 얘기하며 극렬히 저항한다. 


스마트한 삶과 이를 누리는 게으른 몸으로 인해 현관에는 종이박스, 플라스틱, 비닐, 일반쓰레기 등이 신발들과 함께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다. 가끔 가족 모두 일제히 외출을 하는 순간에는 쓰레기들을 잘못 건드려 쏟아지는 비극을 겪을 수도 있으니 발을 신중히 내딛어야 한다. 불러놓은 엘리베이터를 놓칠 수 있다.      


이미 좁아질 대로 좁아진 현관문 한쪽에는 버리기 위해 내어놓은 헌 옷도 할당된 자리와 쪽수는 적지만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특히 걱정이 많을 때는 청소기 돌리는 것보다 우선 이 쓰레기들을 먼저 버린다. 가득 차 있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전후의 비교가 바로 되기 때문에 효과가 더욱 좋다. 특히 마음이 불안정할 때는.      


옷장을 뒤져 일부러 안 입는 옷을, 버릴까 말까의 심판대에서 유예의 대상이 된 옷을 과감하게 버린다. 이때는 무기징역보다는 마땅히 사형이다,라는 입장의 강경한 판사가 되는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헌 옷은 그대로 헌 옷수거함으로 들어간다. 마지막까지 매달려로 소용이 없다. 헌 옷을 버리러 가는 나는 이미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거침없는 발걸음, 눈빛도 빛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버릴까 말까의 고민은 없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에도 걱정을 버리라는 단호한 신호가 전달된다. 영원히 입지 않을 옷과 비워진 옷장의 공간. 그것은 마음의 걱정의 공간과 비슷하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쓸데없는 걱정, 괜한 불안감이 비워진다.      


싱크대의 물때를 제거한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변기를 청소한다. 조금 더 힘든 작업으로 들어간다. 


걱정의 양이 클수록 더욱 손이 많이 가는 청소, 정교한 청소를 시작한다. 화장실 청소와 같은 경우, 타일 사이사이 물때를 제거하고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의 얽힌 머리카락, 미끌미끌한 물 때를 제거할 때는 걱정이고 뭐고 우선 이 더러운 것을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그야말로 걱정에는 특효약. 버려진 칫솔을 이용하여 구석구석을 집착하여 닦아낸다. 물때와 사람에게서 나온 기름이 한 데 섞여 쉽게 청소가 되지 않는 욕실의 경우는 조금 더 전투적인 마음이 든다. 


그래,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아주겠어. 


이것은 한가로이 청소기를 밀 때는 들지 않는 조금 더 전투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이다. 변기 안 속까지 깨끗이 닦아내고 반짝반짝해진 욕실을 바라본다. 전투에서 승리한 기분이다. 며칠은 고급 호텔에서 지내는 것처럼 깨끗하겠군. 깨끗해진 욕실에서 샤워할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청소를 통해 걱정과 두려움, 자신 없음에서 승리한 나는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리고 따뜻한 티를 데워와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잠시 읽는다.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진다. 누구 하나 잡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해진다. 헤밍웨이가 ‘전쟁과 평화’를 얘기했다면 나는 ‘청소와 평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