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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Jul 10. 2022

외할아버지 1



할아버지는 전라도 광주에 사신다.

101세가 되신 할아버지는 현재 큰삼촌과 큰 외숙모가 모시고 계신다.

외할아버지는 혼자서 식사도 챙겨 드시고,

설거지도 하시고,

규칙적으로 산책도 하신다.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올 만큼 근력을 자랑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온전한 정신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 거동하시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정갈하게 살아내시는 모습이 

손자, 손녀들에게는 불가사의한 존재처럼 느껴지지도 한다.



외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외할아버지만 생존해 계셔서 그렇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내게 부모님 같은 존재다.

돌이 갓 지났을 무렵부터 나를 키워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두 분이 한평생 사셨던 전남 장흥군 유치면은

그분들이 80대에 들어서면서,

근처 댐 조성으로 인해 수장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평생의 보금자리를 물속에

잠긴 채로 놓아두고, 대도시 광주의 새장 같은 아파트에 갇히게 되었다.

너른 앞마당과 사시사철 흐르는 개울물, 오래전에는 호랑이도 출몰했다는

뒷산 구비구비가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 들과 산과 냇물이 모두 물속에 있다는 사실은,

새카맣게 깊은 천 길 장흥댐의 물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내 추억마저도 물속에 깊이 잠겨버린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셨다.

특히 외할머니는 깊은 우울감으로 인해 치매를 앓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치매를 몇 년 앓으시다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투병소식을 듣고 광주에 내려갔을 때,

외할머니는 놀라움과 반가움의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반기셨다.

다행히 장손녀와의 추억을 잊지 않으셨었다.

그러나 같은 집에 살며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큰 외숙모가

누구인지 모르셨다. 

나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아주머니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나한데 엄청 잘해주지 뭐냐."


마음이... 아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외할아버지께서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과 상실감으로 건강이 악화되지 않을까 매우 걱정했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실은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난 뒤로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병시중으로 인해

무척 쇠약해진 상태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외숙모가 집에 없는 시간에는

외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온전히 외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외할아버지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편안해지셨다.



오늘 견과류를 김에 싸 먹다가 (나는 간식으로 이렇게 자주 먹는다.)

갑자기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밥상에 앉으면 나는 참새처럼 입만 벌리면 됐다.

숯불에 갓 구운 김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을 올려서

돌돌 만 뒤에, 외할아버지는 혹시나 뜨거울까 해서 입으로 호 불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 관문으로 간장을 살짝 톡 묻혀서

내입에 넣어주셨다.

삼촌 둘과 이모 둘이 있었지만 학업을 이유로 

모두 읍내 또는 외지로 나가 있었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앉은 밥상은

언제나 따뜻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물론 가끔은 만화영화에 빠져서  밥도 안 먹고 TV에 코 박고 있다가

두 분의 걱정을 듣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두 분과 함께한 밥상에 올려진 메뉴를 떠올리자면

한이 없다.

숯불에 구운 것은 가스불로 조리한 것과는 도무지 상대가 되질 않는다.

숯불에 구운 김, 고등어, 갈치.

간식으로 구워주셨던 고구마, 마늘 등등.

외할머니식 소불고기는 국물이 자작자작하다.

계란도 몇 개 넣으신다.

외할머니는 그 바쁜 농사일 와중에도

반찬은 나물에 고기에 생선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한 상 번듯하게 차려내시곤 하셨다.

외할아버지께서 떡을 좋아하셔서

집에서 가끔 밀떡이든 쌀떡이든 만들기도 하셨다.

팥칼국수에 바지락 칼국수 등 너무나 많지만

두 분과의 추억이 깃든 음식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면 국민학교 1학년 3월의 어느 봄날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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