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섬도 보여요.
서귀포에서 일년살기한 집은 정말 한눈에 반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한 번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을까?
내가 집을 고를 때 가장 우선시하는 바로 그 "뷰"가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서귀포 앞바다가 내 품 안에 있는 착각에 빠질 만한
그런 집이었다.
방 3, 거실, 부엌 그 어느 곳에서도 바다뷰가 허락된 곳이었다.
특별히 좋은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그냥 집에만 있어도 놀러 온 것 같은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고 했던가.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바다뷰를 얻는 대신 나에게는
"습기"와 "바람"이라는 별책부록이 생겼다.
물론 제주는 섬이니 당연히 습기와 바람이 기본이기는 하지만,
제주에서도 가장 습하다는 서귀포가 아닌가?
제주시와는 또 다른 높은 습도를 자랑한다.
특히 내가 살던 집은 바다를 항시 접하고 있으니
체감상 습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장마철이나 비가 연일 계속되는 시기에는
곰팡이의 번식속도는 뭐랄까... 음...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열어둔 것도,
나중에 알고 보니 잘못된 방법이었다.
내가 서귀포 일 년 살기를 시작한 시기는 6월 초.
제주에서는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이삿날은 햇빛이 반짝이는 맑은 날이었지만,
이삿짐 풀기 무섭게 날씨는 매일 비가 오거나
습도 높은 흐린 날씨의 연속이었다.
별다른 대비태세 없이 제주 살기에 들떠 있던 나에게
제대로 선방을 날린 것이 바로 '곰.팡.이.'였던 것이다.
며칠 연속으로 비가 내린 뒤 어느 날,
옷방에 걸려있던 옷에서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그것을 보게 되었다.
걸려 있던 옷의 80% 이상에서 곰팡이가 보고된 것이다.
곰팡이의 습격이 가장 심한 옷 순서로 나열해 보자면,
가죽옷,
깜박 잊고 세탁이나 드라이하지 않고 걸어놓은 옷,
드라이나 세탁해서 깨끗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옷,
그냥 옷...
떨리는 손으로 근처 세탁소에 전화를 걸어서
일부는 드라이를 맡기고,
물세탁이 가능한 것은 세탁기에 돌리고...
남편 옷, 아들 옷, 내 옷,
이 작업만도 며칠이 걸렸다.
옷에 핀 곰팡이에 며칠을 두들겨 맞았더니
정신이 얼얼해졌지만
아직은 전투력이 괜찮았다.
이런 나에게 나타난 두 번째 관문,
화장실 곰.팡.이.
그다음에는 집안의 모든 목재 가구에 핀 곰.팡.이.
그리고 한번 닦고 나도 그 자리와 그 옆자리에
다시 '까꿍!'하고 나타나는 곰.팡.이.
곰.팡.이.
또 곰.팡.이....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제습기를 2대 주문해서
밤낮으로 왕왕 돌리며
어느 정도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육지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었던 습기제거용 제품들이
제주에서는 너무 쓸모없게 느껴질 정도로
그 효능이 미미하고 무력했다.
주변 지인분들의 말씀으로는
1. 제주에서 특히 서귀포에서 제습기는 필수다(특히 여름에).
2. 바다를 접한 창문은 오래 열어두면 오히려 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니
여름에는 되도록 열어두면 안 된다.
3. 여름에는 에어컨, 선풍기, 제습기등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습기제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4. 장마철에 집에 습도가 너무 심할 때는
보일러를 몇 시간 틀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신 집안에 사람이 없을 때만 실행가능하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바다가 보이는 집,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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