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찬란한 밥벌이
우리는 일을 한다. 하루에 보통 8시간, 과하다 싶은 날은 12시간까지도. 처음부터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운 좋은 누군가도 있겠지만 대부분 어쩌다 보니 밥벌이를 하고 있다. 줄줄이 딸린 처자식 입에 밥 한술이라도 더 넣어야 하고 당장 다음 달 대출금을 위해 텅장을 다시 채워야만 한다. 갖다 붙인 사정이야 제각각이지만 속뜻은 하나다. 돈이 필요하니까! 이런 날 것의 이유로 일을 한다지만 인간은 참 복잡해서 그저 물질적 가치를 얻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왕 돈 벌 거 스트레스받을지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다. ‘어쩌다 밥벌이’도 이 쓸모에 대한 인정이 없다면 오래 갈 수 없다.
나는 이직을 했다. 첫 직장에서 5년 11개월 여정을 끝내고 올 6월부터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너무나 사랑했던 첫 직장이라 떠나기까지 참 오래 망설였고 퇴사 소식을 접한 주변인들도 평생 다닐 줄 알았다며 놀라기 일쑤였다. 도대체 무엇이 마음을 돌아서게 했을까.
당시 해외영업팀에서 쑥스럽지만, 에이스로 불리다 좋은 기회가 닿아 상품기획팀으로 전배를 가게 되었다. 원래 유관부서로 잘 알던 팀이라 차츰 적응하며 4개월에 접어들던 찰나, 팀이 조금씩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묵묵히 잘 버텨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이 막중한 업무로 병가를 쓰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육아휴직자까지 생겼다. 그 결과 비록 상품기획 4개월 차였지만 업무 평판이 좋았던 내가 가장 중요한 상품 파트를 맡게 되었다. 윗분들의 애정 어린 관심 덕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보고가 생겼고 그 와중에 내년도 출시를 위한 개발 업무가 병행되었다. 그렇게 평일은 늘 야근, 주말은 늘 특근이었다. 그해 봄은 벚꽃이 만개한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
힘든 와중에도 날 버티게 한 것은 이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내 제품이 실적 개선에 이바지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고, 영업팀과 제품 전략을 짜고 해외 법인에 신제품 소개를 하며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 만족감은 풍성했다. 슬쩍 던져주는 ‘이 선임이 진짜 복덩이다!’ 한마디에 지친 와중에 웃을 수 있었다. 일개 ‘직원1’이라 해도 나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반짝임이 무색해진 것은 바로 고과 시즌이었다. 첫 고과 면담 당시 팀장님의 격려와 함께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싱글벙글 퇴근한 기억이 난다. 기대에 부응한 면담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면담 때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진급 대상자가 2명이 있어 결과가 좀 아쉽게 되었다는 것이다. 차라리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갑자기 업무 성과에 흠을 잡기 시작했다. 정말 지적이 필요한 사항이었다면 업무 진행 중일 때 해주시지.. 고과 면담에서 마주한 코멘트는 핑계에 불과했다.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참 좋아한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중략)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無化)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직장인으로 항상 품고 살았던 이 문장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불 꺼진 사무실에서 보낸 몇 달의 밤과 텅 빈 사무실 불을 켜던 그 주말은 무엇을 위해서였나. 뿌듯하든 허탈하든 하루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그래, 내 노동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가자. 젊은 날의 혈기를 밑 빠진 독처럼 부을 순 없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며 이직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그때 쓴 서류가 면접이 되고 합격이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당신이 직장인이든 사업가이든 알바 중이든 우리의 땀은 빛나야 한다. 인정받지 못할 때마다 감히 이 몸을 못 알아봐? 하고 쌩하니 뒤돌아서라는 말이 아니다. 정말 진심을 다해 만족스러운 성과를 만들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외면받는다면 그때는 당신이 용기 내어 무화된 일상을 책임져야 할 타이밍이다. 아직 나도 여기서 어떤 외면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노동에 빛을 더하는 것 또한 내 몫이기에 언젠가 맞이할 그 결실을 향해 달려보려 한다. 일단 그런 의미에서 나 포함 이 세상 모든 밥벌이의 땀이여 찬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