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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Nov 29. 2023

어쩌면 이직이 답이 아닐 수도 있어요 (1)

떠나고 나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그땐 몰랐지! 역시 사람은 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쫓기기 시작하는 순간 앞뒤양옆 살필 겨를이 어디 있어, 그저 '도망'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사로잡히고야 만다. 이직이 간절했던 당시, 오로지 여기만 탈출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이 지상 '지옥'이며 가고 싶은 그 회사들은 유토피아 그 자체로 느껴졌다. 그동안 누려왔던 회사의 복지나 시스템은 정말이지 평범하기 짝이 없었고 의사 결정권자들의 방향성은 비전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급기야 애초에 인생 커리어 패스가 꼬였다며 그때 그럴걸, 이러지 말걸, 걸, 걸, '걸무새'가 되어 그저 과거에 발목 잡힌 채 분노 게이지만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아마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직이라는 선택지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순간부터 미우나 고우나 내 생계를 책임져주던 일터는 삽시간에 온갖 불합리로 가득 찬 천덕꾸러기가 된다.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잘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마치 아이패드병처럼 이건 이직을 해야만 낫는 병의 일종이라 본다.


그리고 이직에 성공해 이전 직장에 객관성이 확보된 지금, 어쩌면 이직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추억은 아름답게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정말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왜냐고?



그놈이 그 놈이다.

그렇다. 진짜로 그놈이 그 놈이기 때문이다. 회사도 다 똑같고 사람도 다 똑같다. 그러니 새로운 직장에 간다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먼저 좋은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 회사에 오기 전 개인주의가 심하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가 있어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그렇게까지 분위기가 차갑지도 않다. 오히려 초반에 이런 선입견을 갖고 시작했던 터라 적응하는데 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저 업무 얘기를 했을 뿐인데 나 혼자 괜히 '역시 딱딱하게 구는구나' 하며 오해한 경우도 있었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 깐깐한 사람도 있고 살가운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자, 본격적으로 안 좋은 얘길 해보자면 당연히 별로인 사람도 있다. 일 안 하는 사람, 지 말만 다 맞다는 사람, 맨날 싸우고 다니는 사람.. 얼굴이랑 이름만 다르지 하는 짓을 보면 여기나 거기나 똑같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서류, 1차 면접, 최종면접, 레퍼런스 체크.. 한 전형씩 고개를 넘으며 이직할 회사에 대한 환상은 날로 커져만 갔고, 이직하게 된다면 시스템에 기반한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분위기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도 Top-down으로 내려오는 무논리 가이드에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못하고 도대체 이걸 왜 하나 싶은 취합을 위한 취합, 보고를 위한 보고가 수두룩하다.


진짜 웃긴 건 블라인드다. 블라인드 특성상 회사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건 사실이다. 근데 이건 뭐 회사 이름 가리고 보면 어느 회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동종 업계로 이직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제일 와닿는다. 두 회사 모두 내 CEO는 무능해서 회사 말아먹는 중이고 경쟁사 CEO는 용장이자 덕장으로서 회사를 눈부시게 이끄는 중이다. 내 회사는 비전도 없고 직원 귀한 줄도 모르는 글로벌 중소기업(당연 대기업인데도 이렇게 불렀다)이고 경쟁사는 미래 먹거리도 풍부하고 쏠 때는 화끈하게 쏴서 직원들 사기 진작도 해주는 글로벌 대기업 대감집이다. 두 회사가 블라인드에서 하는 소리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


그리고 더 웃긴 건 바로 나다. 역시 남의 떡이 제일 맛있어 보이는 법. 그렇게 탈출하고 싶던 전 직장이 요즘 들어 매우 건실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현 직장은 맨날 삽질만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간사한 인간의 민낯인가.


옛 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 그놈이 그 놈이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직 전 부정적 생각에 매몰되어 있을 때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을 깨달음이다. 혹시 지금 이직이 너-무 하고 싶다면 그 맘 200% 이해하지만 잠깐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다시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회계시간에 배웠던 대차대조표처럼 장점과 단점을 두고 하나씩 소거해 나가며. 제 3자의 시선에서도 정말 그곳의 현실이 불합리하고 별로인지. 스스로 편견을 갖고 자꾸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떠나고 나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2탄에서 조금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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