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랍 속 추억의 조각-사랑

by 경완

시원한 여름 끝자락의 밤 향기를 맡으며 오늘 오랜만에 밤 산책을 했다.

우연히 까만 하늘에 해처럼 빛나는 달을 보았다.

동그란 모양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달빛이었지만 보름달만큼이나 밝았다.

나는 달을 보면 나의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외할아버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내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는 항상 외가 시골집 골방에서 가는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서 TV를 보고 계신다.


어느 명절날 외갓집을 방문한 나에게 외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 많이 컸네, TV에서 너만 한 여자애가 나왔는데 어찌나 노래를 잘 부르고 예쁘던지 꼭 너 같더라."

나는 그때는 몰랐다.

할아버지가 늘 마음속으로 나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을.

나는 외가에서 첫 손녀였다.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많은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그리고 엄마는 가끔 나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외할아버지가 오셨던 얘기를 하곤 했다.

외할아버지 신발이 밟힐까 봐 내가 할아버지가 벗어놓으신 신발을 두 손 뒤에 쥐고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너무 기특하고 이쁘다고 엄마에게 자주 얘기하셨다고 한다.

손녀의 작은 행동도 사랑스럽게 봐주셨던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엄마보다 더 일찍 나의 태몽을 꾸셨다.

꿈에서 예쁜 달무리를 보셨다고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올 것을 제일 먼저 알았던 사람이셨다.

그래서 나는 달을 보면,

은은한 달빛 같은 미소를 지은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나처럼 외할아버지도 달을 보고 손녀를 떠올렸을까?

달만이 그 답을 알고 있겠지.

하지만 달은 모를 것 같다.

'자기가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란 것을. .'


내 기억 속의 필름은 추억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수없이 재생된다.

나는 그 필름 속에서 사랑받는 나를 보며,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는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사랑의 영원함을 안다.

그러니 더욱더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누군가 기억 속에 영원히 미소 짓는 사랑으로 기억되고 싶다.

삶은 사랑이 빚어낸 추억들을 기억하고 쌓아 가는 긴 여행 같다.

작가의 이전글오래된 서랍 속 추억의 조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