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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런치 봉작가 Dec 24. 2022

잘하는 것보다 꾸준함이 더 어렵다.

군대시절, 일시적 마라톤 선수를 했다.

대대, 여단, 사단 체육대회에 이등병, 일병, 상병 계급 대표선수로 뛰었다.


난 입대 전 사회에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군 생활의 시작을 마라톤 선수를 하게 된 것은

순수하게 포상휴가라는 단순한 동기때문이다.   


군대에서 체육대회는 부대의 일종의 전투력 측정이고,

지휘관들의 자존심 대결이며, 지휘간의 능력 평가도구다.


내가 선수로 발탁이 될 수 있었던 건

평상시 담배를 피우지 않아 남들 보다 폐활량이 좋았고,

약간은 단순무식했던 스무 살의 청년의 나는

쓰러질지언정, 아무 생각 없이 뛰었다.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같았다.

때문에 당시 별명으로 '포레스트 검프'로 불리기도 하였다.

자대 배치 후 한달만에 여단내의 이등병 대표선수가 되었다.


군대의 마라톤은 사회의 마라톤과 달랐다.

이름은 "역전의 마라톤"이라 불렀다. 사실, 이 경기는  죽음의 레이스다.  


맨몸이 아닌, 전투복장에 뛰는 것이다.

소총을 등에 메고, 머리에는 철모를 쓰고, 군화를 신고, 전투복 차림으로 부대 깃발을 오른손에 들고

약 2.5km를 뛴다.


이등병을 시작으로 일병, 상병, 병장, 소위, 상사, 원사, 간부들까지

한 계급 사람당 2.5km를 달려, 릴레이식으로 도로의 긴 구간을 돌아오는 경기다.


이 복장에 2.5km를 뛰면,

군경력과 체력에 상관 없이 다 초주검이 되었다.  

구간마다 산소통을 구비해 놓았다.

쓰러지면, 입에다 갖다 되었다.


여단장 같은 간부들에게는 우승은 지휘관의 능력과 직결되것이고

진급과 관련된 일이기에,

모든 체육대회는 실제 전투훈련이다.  


이등병 대표선수로 발탁 후

두 달간 합숙 부대숙소에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마치 태능선수촌 선수처럼

오전부터 오후까지 뛰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갈증해소와 에너지 보충에 설탕물을 마셨다.


산악구보도 하였고, 타이어를 끌기도 하고,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연습했다.

실미도 같은, 지옥훈련이었다.

무더운 5월 날씨에 연습은 잘 못하면 사람이 죽을수 있다.


문제는 다른 부대로 똑같이 목적을 갖고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군대에는 전국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사회에서 사이클 선수, 마라톤 선수를 하다 온 사람도 있다. 그들을 상대로 이겨야 하는 게임이다.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는 이 마라톤에서 이등병의 출발이 중요했다.

이등병이 첫 스타트를 어떻게 잘 끝어 내느냐가

경기의 전체 승패를 좌우할 수 있었다.   


평범한 비 선수출신의 나는, 나름의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나만의 전략을 세웠다.


마라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페이스 조절이다.

페이스를 잃고, 호흡의 페이스를 잃어버리면 게임은 끝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참가 이등병이 연습 기간의 그 페이스 조절을 잃어버린다면...


승자는 끝까지 버티고 나아가는 놈이 이기는 것이다.  

이게 나의 전략이었다.


총 6개의 여단의 이등병 대표가 출발 선상에 놓였다.  '땅'

나는 첫 시작부터,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힘차게 달렸다.


그러자 이등병 대부분이 순간 깜짝 놀라

그 동안의 연습을 통한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잊은 채, 모든 출전 이등병들이 뛰기 시작하였다.


"내 전략에 모두가 말려 든 것이다."


페이스와 호흡균형을 잃은 6명이 1킬로를 넘어서는 시점부터,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 놓였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했다.


여기부터는 남은 1.5km까지는

버티고 나아가는 사람과 중도에 걸음을 멈추는 사람으로 나뉜다.


예상대로, 나와 한 사람은 끝까지 달렸고,

나머지 4명은 점점점 뒤 쳐지게 되었다.


숨이 깔딸깔 넘어간다는 그 느낌을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당시 느꼈다.

난 1,2등으로 동시에 들어왔고,

오른손의 바톤깃발을 다음 주자에게 전달하였다.


심장 터질 듯한 고통이 왔고, 그대로 쓰러졌다.


전략은 먹혔고 내 맡은 역할은 이뤘다.   

우리 팀 상병에는 마라톤 선수 출신이이었다.

그가 좀 더 간격을 벌려주면,

우리 여단은 승리할 것이다.


결과는 우리는 이겼다.

'맹호부대' 사단 내에서 승리 부대가 되었다.  

 

통일 역전 마라톤은 우리 여단의 유일한 우승 종목이 되었다.

 포상휴가증을 얻었고,

그렇게 난 군대시절 잘 뛰는 놈이 되었다.


당시 내가 이길 수 있었건 것은

남은 1킬로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꾸준히 나아간 것이다.


기술도, 실력도 다 상관없다. 그냥 밀고 나아가는 힘 때문이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 속에서 말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요즘 절절히 느끼는 건

뭔가를 잘하는 것보다, 꾸준히 해 나가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삶에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은

결국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였다.


브런치 글쓰기, 유튜브도, 인스타도, 블로그도 끝까지 하는게 제일 어렵다.


최근에 다나까 상이라는 재밌는 개그맨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 스스로가 이렇게 재미있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라줄까? 무명의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그는 그 컨셉을 4년간 유지했단다.


라디오 스타 출연에서 자신이 어느 댓글에 빵 터졌다고 한다.

" 짓거리를 4년이나 하다니..." 놀랍다는 댓글의 네티즌의 반응이였다.  


그의 집념과 꾸준함에 이제 사람들이 인정하고,

그 빛을 지금 보는게 아닐까?


나도 그의 꾸준함을 인정하고 응원하고 싶다.


이젠 나도 나만의 색깔로 "브런치 글쓰기"와 "유튜브"를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밀고 나가보면,  

어쩜, 브런지 구독자가 1,000명이 되고,

유튜브 구독자가 10만 명이 되는 날도, 오고

좀 더 새롭고 재밌는 일이 생겨나지 않을까?


잘하는 것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위해

오늘도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끄적여 본다.  


By 브런치 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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