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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pr 21. 2023

누군가 내게 물었다: “한국어 어디서 배웠어?”

베를린 지하철 안, 한동일 작가님의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느 역에서 맥주병을 든 덩치 큰 남자가 내가 있는 칸에 탔다. 친구와 엄청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술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았다. 독일에선 배려심이 없거나 공공장소에서 개념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아지(반사회적이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asozial의 줄임말)’라고 하는데, 그는 한눈에 봐도 아지였다. (참고로 여름의 베를린에는 병맥주를 들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이 흔하다. 이걸 전철에 들고 타는 건 다른 문제고, 오히려 전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통화하는 게 독일에선 상당한 실례다)


나도 모르게 ‘제발 내 옆에 앉지 마’라고 바라고 있으니 그가 내 마음을 딱 알아챘는지 내 바로 옆에 앉았다. “XX역에서 내려야 하니 기억하라구!”라고 건너편에 앉은 자기 일행을 향해 외치더니, 심지어 맥주병을 발 앞에 세워뒀다가 열차가 움직이자 결국은 맥주를 바닥에 쏟고야 마는 그였다. 그는 관중(?)을 향해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이제는 ‘혹시라도 제발 말 걸지 마’라고 빌었더니 잠시 후, 기어코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 차분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지금 뭐 읽고 있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이거? <라틴어 수업>이라는 한국어 책이야.”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국어? 이 글자가 한국어야?”

“응.”

“완전 멋있다, 한국어.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는데?”


나는 그의 논리가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나보고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 엄마한테서.”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낯설다면, 그래서 한국이 아프리카에 있는지, 남미에 있는지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동양인인 내 외모와 이 책은 한국어라는 내 설명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그렇다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레짐작하려 들지도 않고 직접적으로 어디서 왔냐고 묻지도 않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국’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점도 사실이고 말이다. 어쨌든, 내가


“그리고 학교에서도 계속 배웠지.”


라고 떡밥을 더 줬는데도 그는


“오, 학교를 한국에서 다녔어?”


라는 것이었다.


“응. 나 한국인이야.”


그는 그제야 아하, 했다. 그러더니 한국어가 또 너무 멋있다며 이제는 책 중에 단어 하나만 골라서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별 의미 없는 단어 하나를 보여주고 소리 내 읽어주고 뜻도 설명해 줬다. 우리는 통성명까지 했지만 나는 곧 내려야 했다. 불쾌한 첫인상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유쾌한 대화였다.


그의 심리를 좀 더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너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 자체가 ‘미세 공격(microagression)’에 해당한다는 학설이 있다. 미세 공격이란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 체스터 피어스가 고안한 개념으로, 소수집단을 향한 고정관념이 미세하게 차별적인 언행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인종을 제도적으로 불평등 대우하는 것은 미세 공격이 아니라 명백한 인종차별에 해당한다. 반면 ‘너 어디서 왔니’는 ‘네 외모는 여기서 주류가 아니니 이곳 출신이 아니겠구나’라는 논리가 들어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적극적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미세 공격인 것이다. 아지 역시 이런 의미에서 직접 내 출신을 묻지 않고 한 단계씩 질문을 우회해 간 것일 수 있다.


실로, 외모로 내국인/외국인을 구분하는 것은 베를린같이 국제적인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에 가본 적 없는, 이민 2,3세대인 한국계 독일인에게 ‘너 어디서 왔어?’라는 말은 실례가 될 수 있다. 그 사람은 ‘나 여기서 왔다, 왜.’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생긴 걸 떠나서 나는 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국인인데 한국인들이 자꾸 나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기분이 어떨까.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엔 실제로 OO계 XX인이 많고 출신지를 설명하려면 복잡하거나 예민한 정보가 줄줄이 필요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내 출신지가 악명 높은 독재국가이거나, 대부분의 외국인이 들어본 적 없어 ‘어디라고? 그게 어디야?’라고 되물어야 할 만큼 작은 나라일 때, 초면에 누가 ’어디서 왔니‘라고 묻는다면 대화가 단번에 어색해질 수 있다. 출신 국가는 태어나면서 ‘우연히’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내 고향인 XX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혹은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것과 개인인 나의 정체성은 별개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뿐만 아니라 독일어 수업에서 만난 쿠르드인 친구처럼 국적을 단 한 단어로 대답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일 수 있다. 가볍게 지나가듯이 형식적인 인삿말처럼 출신을 묻는 사람에게 튀르키예와 쿠르드족의 갈등관계를 다 설명하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울 것이다. 누가 대뜸 어디서 왔냐 물으면 친구는 속으로는 한숨을 쉬며 ‘튀르키예’라고 답할 것 같다.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는 질문으로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또 서툰 발음이나 억양을 보고 ‘말하는 걸 보니 원어민이 아니군.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야지.’라는 판단을 하는 것도 모국어 사용자가 비모국어 사용자의 부족함을 ‘평가’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미세 공격의 한 형태라고 한다. (심지어 ‘너 독일어 잘한다’라는 모국어 사용자의 칭찬 역시, 서로에 대한 정보와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는 미세 공격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외모는 비독일인인데 언어가 독일인에 가깝다니 놀랍다’는 평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남자는 이렇게까지 길게 생각하고 말한 것 같진 않다. 그는 한글을 처음 본 듯했고, 한글의 생김새 자체에 정말 호기심과 관심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선입견을 꺼내 들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동양의 언어와 동양인은 자신이 잘 모르는 영역인 만큼 ‘틀린 질문’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비록 그가 열차 안에서 떠들고 맥주까지 쏟은 건 정말 아지스러웠지만 이 대화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 어수선한 와중에도 낯선 소수집단의 누군가에게 단 한 톨의 실례도 범하지 않은 그의 열린 사고방식이 부러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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