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라는 신비하고 귀중한 능력
우리말 재평가하기
언어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나는 이 말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돌고래나 벌, 떼를 지어 비행하는 새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은 인간이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정교하다. 단지 그 소통방법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 ‘언어’로 인정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언어’라는 표현 자체가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지칭하는, 인간의 단어이므로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는 마치 ‘하늘색은 하늘에만 있다’와 같은 동어반복이 아닐까. 그보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모국어’라는 구체적이고도 상대적인 언어의 형태다. 모국어는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음식을 씹거나 걷는 것을 익히게 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습득한다. 또 발음, 억양이 사람마다 다르더라도 희한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언어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해외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모국어의 중요성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특히 독일어 책을 읽다 보면 내게 모국어가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의 하나 아렌트까지 독일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철학자들의 필수 저서는 한국어 번역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을 때가 있지만 어쨌든 한글을 읽을 때면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적고 스트레스도 적으니 가끔 한국어판에 의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다.
한편 내 모국에서 내 모국어가 공용어로 쓰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선 학교 및 공공장소에서 공용어로 일본어를 써야 했고 창씨개명까지 해야 했는데 이는 한 민족에게 비물리적인 방식으로 해를 가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외국어를 갑자기 공용어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공공기관에서, 학교에서, 법률과 규칙 앞에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취업시장이나 법정에서 언어 때문에 무수히 많은 억울한 사건이 벌어진다. 특히 이 언어 박해가 다음 세대까지 지속될 경우, 부모의 모국어는 한국어인데 자식은 일본어가 더 편해질 것이다. 일본어로 대화하고 싶고 미래에는 당연히 일본어로 공부하고 일본어로 일하고 싶은 아이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이유가 딱히 있겠는가. 강제로 모국어를 잃고 자신의 지식과 지성과 재치까지 빼앗기다 못해 자식 세대와 정신적으로 동떨어지는 고통은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그나마 35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아주 긴 세월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 등 유럽의 지배를 받은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와 민족은 고유어를 잊거나 잃고 수 세기동안 유럽어를 쓰고 있다. 그러면 그 땅에서만 자라는 풀이름, 전통에서 비롯된 명칭이나 비유들, 고유 언어만이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속담이나 전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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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생 시절, 독일어 수업에서 자신이 튀르키예 출신이라고 말했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와 2인 1조로 토론을 하게 되었고 주제는 ‘세계화와 해외 이주’였다. 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부지 같은, 겉멋만 든 아나키스트 같은 소리를 했다.
“나는 국경이나 국적 같은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봐. 내가 살고 싶은 데 가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면 그걸로 만족해.”
그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나는 사실 쿠르드인이고 모국어는 쿠르드어야. 그런데도 쿠르드인들은 튀르키예에서 독립하지 못해서 학교에서는 튀르키예어를 쓰고, 여권도 튀르키예 국적으로 나와. 우리 친척들 중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 전투에 참여하는 분들도 계셔. 난 정말 쿠르드인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싶고 그 국적을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넌 어떻게 국적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을 할 수가 있어?”
나는 그의 단어들이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아 말을 잊지 못했다.
현대 한국인에게는 모국어가 능력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권리이자 권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어가 한국 영토에서 갖는 권력은 절대적이니 말이다. 반대로 쿠르드인 친구의 경우, 모국어로서 쿠르드어는 그의 능력일 순 있지만 이 언어는 그가 살아온 사회에서 권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내가 누리던 것이 너무 당연해서 내가 뭘 누리고 있는지도, 그걸 가져본 적이 없는 누군가가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대학 입학 후 자유대 독일어 수업에서 만난 이들 중에는 시리아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한 학기가 끝나고 독일어 수업의 클래스메이트들끼리 이 수업이 어땠는지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나는 교수법이 마음에 들었고 특히 글쓰기 과제에서 상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거나, 나름 자신이 독일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어떤 게 좋았고, 어떤 게 더 필요하다는 식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시리아 친구만은 어딘가 심드렁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독일어가 좋아서 혹은 독일이 좋아서 독일어를 배우는 게 아니란다. 시리아 내전으로 모국에서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보여 어쩔 수 없이 가족 모두가 독일로 피난을 왔으니 독일어를 배우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독일어를 배우는 일에 열정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모국어의 국경을 넘는 일의 무게란 도대체 얼마나 될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난 ‘아, 맞다. 세상에는 아직 전쟁이 존재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누려온 행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 및 정치학자 하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 말살 정책을 본격화하자 프랑스와 미국으로 이주했다. 피신하지 못한 유대인 6백만 명은 나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유대인인 아렌트가 독일에 품은 억하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생전 아렌트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에서 학업과 연구를 이어가던 당시) ‘독일’을 떠올리면 ‘두 번 다시는…’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죠. 하지만 내 모국어는 여전히 독일어입니다. 일상에서는 영어를 쓰고 책과 논문도 영어로 쓰지만, 내 모국어가 독일어라는 사실은 어떻게 바꿀 수가 없어요.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어도 내가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독일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너무나 하잘것없습니다.”
하나 아렌트가 독일을 떠올리는 방식과 내가 우리나라를 대하는 마음은 물론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나도 한국과 한국어를 분리해보려 한다. 한국식 정치, 한국식 사회생활, 한국 일 문화는 싫지만, 한국어는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산이고 힘이다. 우리말은 우리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 준 말, 내 머릿속 서재를 꽉 채운 말이다. 우리말은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