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께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사랑과 회한(悔恨), 그리고 그리움
어머니께 “마트에 같이 가실래요?” 하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손사래와 함께 “싫다”였습니다. 30년 홀로 살아오신 어머니에게는 타인의 도움이 오히려 부담이자 방해일 터. 예전 같지 않게 몸이 무거워지고 걷는 일이 힘겨워진 탓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늙음이 몸에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한 탓인지, 어머니의 세상은 점점 집 안으로만 좁혀 놓고 있었습니다.
긴 의자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모습. 그 모습은 편안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쓸쓸함이 감돌았습니다. 모자지간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내고자, 그럼 "신발 한번 벗어 보소!" 하며 벗겨드리자 어머니는 의아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오래 신으시던 신발이 지저분해 보여, 물을 받아 깨끗이 씻어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별짓을 다 한다”며 극성스럽다 꾸짖으셨지만, 그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이상하게 울컥했습니다.
햇볕에 말리며 나란히 세워둔 신발을 바라보니, 젊은 날 무심했던 기억들이 물방울처럼 스며들었습니다. 왜 이제야….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평생 자식의 옷과 신발을 새것처럼 챙겨주면서도 단 한 번도 생색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저 30년 고독의 벽을 허물지 못한 죄책감 속에서, 단 한 번 신발을 씻어드린 적흥적 작은 행동에 감정적으로 휩싸이고, 죄송함과 그리움에 젖습니다.
이 작은 행동이 자식 가슴에 큰 파동으로 다가온 것은, 그것이 '효도'가 아닌 나의 '무심함'을 닦아내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끄러미 지켜보신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다만, 30년 고독 속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나이든 자식이 보이는 이 뒤늦은 정성은 하나의 작은 재롱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습니다. 신발은 어머니가 걸어온 세월의 자국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홀로 감내해 온 어머니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굳건한 고독 앞에서 생색내는 자식이 되어 잠시나마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받았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