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묻지 못한 질문

대열의 맨 뒷자리에서 배운 리더십

by 세바들

질문은 늘 마음의 언저리에 고여 있었다.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것은 망설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 ‘할 수 없었던’ 쪽에 가까웠다.


그 시절, 우리 조직 안에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직책자와 일반 사원, 그리고 노사라는 이름표가 만든 간극은 생각보다 깊고 서늘했다. 노동조합의 하급 간부였던 나의 위치는 그 경계선 바로 아래 머물러 있었다. 위에서는 정책이라는 파도가 내려왔고, 아래에서는 피로 섞인 불만이 모래성처럼 쌓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의 질문은 검열되는 게 일상이었다. 어떤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태도를 의심받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삼키게 만든 가장 큰 벽은 한 선배였다. 그는 단호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특히 사내 노동조합 집회가 있는 날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숙제’를 안겼다. 도저히 제시간에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업무들이 내 책상 위로 쏟아졌다. 숨 가쁘게 일정을 마치고 뒤늦게 집회 장소에 도착하면, 나는 언제나 대열의 가장 뒷자리에 서야 했다.


대열의 끄트머리 자리는 참으로 외롭고 무거웠다. 뒤늦게 나타나 멀찍이 서 있는 나의 모습은 조합원들 눈에 ‘성의 없는 간부’ 혹은 ‘눈치 보는 기회주의자’로 비쳐졌다. 그날의 집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나를 향한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이었다. 그 일은 내가 노동조합과 서서히 멀어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선배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왜 하필 오늘입니까? 왜 저를 이토록 곤란하게 만드십니까?” 하지만 그의 표정은 안정적이었고, 목소리에는 감정의 일렁임이 없었다. 그 정적 앞에서 나의 질문은 자꾸만 변명처럼 초라해졌다. 설명을 요구하는 행위는 선배의 판단을 흔드는 철없는 투정처럼 느껴졌다. 나는 결국 묻기를 포기했고, 그 질문은 마음에 앙금처럼 가라앉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도 팀장이 되었고, 조직의 책임과 경영의 흐름 속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판단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고서야, 오래전 가라앉았던 그 장면들이 다른 얼굴로 떠올랐다.


어쩌면 선배는 내가 ‘노동조합 간부’이기 이전에 ‘회사의 일원’으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 내가 서게 될 이 ‘관리자’의 자리에서 겪어야 할 고독한 선택들을 미리 연습시킨 것일까.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무리한 지시들이 사실은 조직을 움직이는 원칙을 몸소 가르치기 위한 선배 나름의 방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제 나는 질문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질문을 받는 자의 위치에 서 있다. 후배들의 의구심 어린 눈빛 앞에 설 때마다, 침묵하며 숙제를 던지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단호함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조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묻지 못한 질문들은 증발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시간을 건너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다준 단단한 계단이 되었다. 그 질문 덕분에 나는 조직을 바라보는 입체적인 눈을 배웠고, 비난받을지라도 결정을 감당해야 하는 리더의 태도를 익혔다.


그시절 질문을 끝내 묻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묻지 못한 질문 속에서도 배움은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대답을 얻지 못했던 그 공백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뜨거운 수업이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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