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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은 좋은 자세를 만듭니다

내가 식사를, 식사가 나를 대하는 태도

by 위시

저번에 식사를 할 때의 자세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늘 다리를 꼬고 올바르지 못한 자세로 밥을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알아차릴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의식해서 똑바로 앉으려 노력해도 몇 초 가지 않아 다시 원상복귀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자세는 억지로 의식해서 고쳐 잡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연말, 도쿄 쿠라마에의 한 식당에서였습니다.


저는 그날의 첫 손님이었습니다. 오픈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저를 종업원이 중앙의 큰 테이블로 안내했습니다. 그날의 정식을 시켰는데, 메뉴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돼지고기 카츠 롤을 중심으로 반찬과 국이 어우러진 근사한 정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식당의 음식은 자세를 고쳐 잡게 하는, 좋은 자세를 만드는 음식이라고요.


도쿄 쿠라마에의 후쿠모리 식당


신선한 음식이 네모난 플레이트에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순간, 그 세팅 앞에서 저절로 허리가 곧아지고 어깨가 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젓가락을 쥐고 반찬 사이를 오가는 손짓은 우아해지고 음식물을 씹는 입은 고요해졌지요. 습관처럼 또 다리를 꼬려다가, 오히려 그 자세가 더 불편하게 느껴져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어정쩡하게 들었던 다리를 다시 바로잡아 땅에 똑바로 디뎠습니다. 마치 이 품격 있는 요리와 대면하듯이, 적당한 설렘과 긴장에 몸가짐이 바르게 되더군요.


먼저 품위와 예의를 갖추고 내 앞에 자리한 음식 앞에서는, 그에 응하는 마음으로 나의 품위와 예의도 갖추게 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찌그러진 양푼 냄비에 후딱 끓인 라면을 아무 책을 냄비받침 삼아 올려 두고, 뚜껑만 열어 세팅한 김치로 차려진 상차림을 상상해 봅시다. 저절로 다리 한쪽이 올라가고 허겁지겁 부산스럽게 먹는 모습이 상상가지 않은가요. 그러나 같은 음식이라도 큰 보울에 라면을 옮겨 담아 그 위에 파를 썰어 보기 좋게 플레이팅하고, 예쁜 접시에 김치를 옮겨 닮아 먹는 식사는 훨씬 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저절로 바른 자세로 앉게 되고 어쩌면 첫 술을 뜨기 전 두 손 모아 경건하게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급진 식당에서 먹는 정식과 집에서 간단히 차려 먹는 음식을 비교할 순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기본적으로 대접의 의미입니다. 집에서 스스로 상을 차리는 것 또한 나와 가족을 위한 대접의 행위입니다. 근사한 접시를 활용해 화려한 플레이팅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신경하게 흩트려놓을 그릇을 신경 써서 정갈하게 놓고, 반찬통을 그대로 내놓는 대신 접시에 덜어 먹고, 이왕이면 식기의 짝도 맞추는 정도의 디테일에 정성을 들이는 것만으로, 식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한결 달라질 것입니다. 거기에 취향껏 플레이트나 테이블 매트를 활용하면 더욱 품위가 더해지겠지요.


상 앞에서 흐트러진 자세가 나오는 것은 나쁜 습관의 탓도 있지만, 어쩌면 딱 그 정도의 태도를 지닌 상차림 탓도 아니었을까요. 바른 자세로 식사를 하는 것의 첫 번째 단계는, 바른 자세로 상을 차리는 것입니다. 좋은 상차림 앞에서는 절로 예의를 갖추게 되는 법입니다.


혼자 식사를 하더라도 정성스럽게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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