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닮은 식사
어제는 도쿄 쿠라마에의 식당에서 느낀 ‘자세를 만드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연장선으로 오늘은 ‘아코메야도쿄’에서 느낀 식사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이번에는 ‘속도를 조절하는 음식’입니다.
아코메야는 쌀을 주축으로 쌀 상품과 큐레이션은 물론, 일본 전반의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를 다루는 브랜드입니다. 아코메야에서 취급하는 품질 좋은 쌀과 식재료로 구성하는 메뉴를 파는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요.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 밤, 지친 걸음으로 시부야에 들렀을 때 아코메야식당의 메뉴판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소 비싼 가격에 망설여졌지만, 그 유명한 아코메야가 제안하는 식경험은 어떨지 궁금한 데다가 마침 생선 정식도 먹고 싶었던 참이라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감상을 말하자면, 마치 여행을 한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할 땐 오롯이 다가오는 다채로운 풍경 속을 집중해서 거닐다가, 식사를 마친 순간 마치 지금껏 떠나온 훌륭한 여정을 돌아보는 듯한 풍족함과 뿌듯함이 들었지요. 무사히 여정을 마무리지었다는 상쾌한 기분과 함께 축하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식탐이 많아 자주 허겁지겁 먹는 습관이 있는 저에게 있어 아코메야의 음식은 정중한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듯한 음식이었습니다. 모든 식재료의 각기 다른 식감과 맛, 향을 음미하며 먹기 위해 저절로 속도를 늦추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게 되었지요. 혀에 순차적으로 느껴지는 신선한 맛들, 특히나 일본에서밖에 경험할 수 없을 듯한 생소한 맛의 향연이 이어지다 끝에서는 깔끔한 여운으로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국 하나에도 당근, 무, 두부, 묵, 마, 고기 등등 엄청난 가짓수의 재료가 들어가 풍부한 맛이 느껴지고, 모든 재료가 하모니를 이루어 맛이 일품이었지요. 식사를 하면서도 '당근이 이렇게 달달할 수 있다니! 내가 요리할 땐 우웩스러운 맛이었는데...', '이건 뭐지? 생각보다 맛있는데' 하며, 각 식재료의 매력을 새롭게 알아갔습니다. 마치 여행을 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영감을 얻는 것처럼요.
저번 후쿠모리 식당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좋은 음식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맛이 파도처럼 한 번에 오지 않고, 계단을 걸어 올라오듯 뚜벅뚜벅 텀을 두고 오는 것입니다. 첫맛, 중간 맛 그리고 마지막 여운. 모든 재료가 차례를 두고 혀에 녹아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음식 하나를 씹어도 ‘고기 맛이구나’하고 감상이 단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맛이 서서히 합류하여 조화로운 앙상블로 마무리되는 풍부한 식경험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 있는 내내 맛있게 저녁을 먹어도, 집에 들어갈 때면 입이 심심해 꼭 야식을 사들고 돌아가곤 했는데요. 아코메야에서 식사를 한 밤에는 딱 좋은 산뜻함으로 마무리된 입 안을 야식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아 처음으로 야식과 캔맥주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식사 그 이후의 생활까지 건강한 방향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고서야 여정을 마무리하는 친절한 가이드 같았다고 할까요. 또 배는 부른데도 더부룩하지 않은 편안한 느낌에도 놀랐습니다.
실은 바로 전날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치란 라멘을 먹었습니다. 둘 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사였지만, 정반대일 정도로 서로 다른 경험이었다는 점은 재미있었습니다. 이치란에서는 그리웠던 맛에 감동하여 후루룩후루룩 허겁지겁 먹어버리고, 다 먹은 후엔 자극적인 감칠맛과 마늘향이 입 안에 계속 남고, 얼큰하게 목구멍을 데웠으니 차가운 맥주가 절로 생각났거든요. 아코메야에서의 식사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식경험을 한 셈입니다.
환장할 듯 맛있어서 마구마구 먹게 되는 음식도, 모든 맛이 정성스럽고 싱싱해서 천천히 곱씹으며 먹게 되는 음식도 모두 좋습니다. 왕도는 없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식경험을 연출하고 또 즐길 수 있다는 걸 느끼자 요리에 대한 저의 식견이 넓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요리에는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많은 수고가 들어갑니다. 갖은 재료로 육수를 내고, 티 나지 않는 고명을 올리는 모든 손길은 일일이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단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맛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한 입을 씹어도 맛이 순차적으로 혀를 두드리니까요. 그렇게 한 번의 식사를 하여도 마치 여러 동네를 여유롭게 산책하다 돌아온 것처럼 풍부한 여정을 한 기분이 드는 것. 그것이 수고와 정성이 물씬 들어간 음식의 묘미가 아닐까요.
길의 모든 풍경을 담고 싶어 천천히 걷고 음미하게 되는 음식, 절로 속도를 줄이게 만드는 음식은 또 곧 좋은 자세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