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는 다른, 오늘만의 우주
당신의 하루는 얼마나 똑같이 반복되고 있나요? 비슷한 시간에 기상해 똑같은 순서로 외출 준비를 한 뒤 비슷한 아침 식사를 하고 똑같은 길을 통해 똑같은 회사에 가고 퇴근 후엔 늘 즐기던 것을 하며 비슷한 시각에 잠에 드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 반복되는 일상, 요즘의 말로 ‘루틴’의 정석을 이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주인공 ‘패터슨’입니다.
미국 뉴저지 패터슨에 사는 버스 드라이버 패터슨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보냅니다. 6시 반 언저리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아내와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누고, 부엌에서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고, 아내가 준비해 준 도시락통을 들고, 늘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합니다. 매일 같은 버스를 타서, 같은 노선을 운행하고,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같은 시간에 퇴근해 집에 와 아내와 단란한 저녁 식사를 하고, 반려견 마빈과 산책하다가 늘 들르는 바에서 술 한 잔 걸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러한 일상 속에서도 패터슨이 즐기는 자신만의 루틴이 있으니, 바로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틈틈이 시를 쓰는 일입니다.
하지만 똑같아 보이는 일상에도 변화는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도 날마다 조금씩 다르고, 버스 운전하면서 듣는 승객들의 사연도 다르고, 도시락의 메뉴도 다르고, 산책하다가 만나는 사람과 바에서 벌어지는 일도 매일매일 다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변주되는 것들은 패터슨의 인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넓혀 줍니다. 아내가 쌍둥이 꿈을 꾸었다고 얘기한 날부터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쌍둥이들이 유독 자주 보이고, 아침에 시리얼을 먹다 테이블에서 어떤 브랜드의 성냥갑을 발견하고는 시의 소재로 삼기도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평소 그냥 지나칠 법한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너, 거기 있었구나’ 하고 알아채는 행위이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세계를 똑똑 두드리는 일상 속 다양한 변주들이 모두 시적 순간이 됩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일상 속에서 포착한 대상을 시로 기록하는 패터슨은 언뜻 똑같은 매일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매일 다른 하루를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반복되는 풍경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알아챌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지요.
저도 요즘 비슷한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10시 언저리에 일어나 책을 읽고 <라이프마인드>를 쓰고,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고 따뜻한 차와 함께 업무를 조금 하고, 4-5시쯤엔 조깅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고 영어 공부를 한 뒤 책을 읽다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듭니다. 이런 일상을 두고 스스로 ‘별 거 없이 늘 똑같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패터슨의 하루처럼 제 하루도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펼치는 책의 내용이 달라지고, <라이프마인드>의 주제가 달라지고, 점심 메뉴가 다르고, 조깅하다 마주치는 고양이들이 다릅니다. 이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도 매일매일 다른 것들과 마주치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어제는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고서 흥미를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패터슨>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던 것은 우리의 일상이 늘 똑같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일상을 살고 있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매번 다른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매일 달라질 일상의 풍경도 기대가 되는 한편, 늘 한결 같이 일상을 지탱해 주는 집 안의 똑같은 풍경과 사물도 애틋해지더군요. 똑같은 펜이라도 매일 적는 내용이 달라지고, 똑같은 스피커라도 매일 듣는 음악이 다르니까요.
일상은 어쩌면 반복되는 삶 속 변하는 풍경과 변하지 않는 풍경의 변주인 것 같습니다. 매일 변하는 것만 있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만 있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같음 속 다름’이라는 하모니를 이루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것들을 선물처럼 안겨 주는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매일 오가는 출근길, 매일 들르는 카페, 매일 앉는 책상에서도 알고 보면 매일 오늘만의 우주가 새롭게 펼쳐집니다. 언뜻 어제와 비슷해 보이는 풍경 속, 오늘만의 우주를 발견해 보는 일이 바로 시를 쓰는 일이 아닐까요? 시인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 봅시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