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마무리, 정화하는 시간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온 저녁,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질 좋은 휴식에 대한 갈망이 늘어났습니다. 집이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저를 편안히 환대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는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전부터 늘 갈증을 느끼고 있던 것은 욕실이었습니다. 6평짜리 작은 자취방에서 욕실이란, 집 안에서 가장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곳이기 마련입니다. 가장 좁은 면적, 촌스러운 디자인의 캐비닛, 구석구석 낀 물때와 곰팡이, 녹슨 수전 등 얼른 씻고 나가고만 싶어지는 공간이지요. 더군다나 불빛은 또 얼마나 쨍한 형광등인지요! 몸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는 낮은 조도에 따뜻한 조명이면 좋을 텐데요. 깨끗하고 낭만적인 욕실에서의 휴식은 훗날 내 집을 구했을 때 누릴 수 있는 먼 사치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집이 나를 위로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커지면서, 욕실이란 공간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세안을 하고, 샤워를 하고, 배변활동을 하는 기능적인 공간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욕실의 본질은 외부와 소셜 등에서 차단된 오직 사적인 공간에서 하루의 찌꺼기를 씻어 흘려보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목욕하는 시간 또한 그렇습니다. 대충 물을 찌끄리고 거품을 묻혀 얼른 씻고 나오는 시간이 아닌,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고 머릿속의 상념들을 곱씹으면서 내 몸을 들여다보고 케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욕하는 시간을 나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리추얼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마침 톤28의 팝업을 방문해 좋아하는 향의 바디스크럽 샘플을 얻게 되었습니다.
좋아, 오늘은 한 번 특별한 목욕을 가져볼까?
그런 생각으로 일단 욕실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환한 형광등을 과감히 끄고, 캔들 두 개를 켰습니다. 하나는 변기 위에, 하나는 세면대 위에 올려 두고 불을 밝혔더니 어두컴컴한 욕실에 딱 좋은 조도의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습니다. 스위치에 일체되어 있던 환풍기까지 꺼지니 주변이 더욱 고요해졌지요. 블루투스 스피커로는 가사 없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 캐비닛에 두었습니다. 불빛은 어두워지고 소리는 고요해지니 온몸의 감각이 더욱 예민하게 살아나면서, 몸에 따뜻한 물을 뿌리자마자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느낌이 평소보다 강렬하게 스며들었습니다. 거기에 톤28 바디스크럽을 바르자, 기분 좋은 플로럴 향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마음까지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지요. 평소에 밝은 불빛에서 대용량 바디워시로 대충 몸을 씻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하고 아늑한 경험이었습니다. 자연의 향, 자연의 소리, 부드럽게 일렁이는 촛불까지... 마치 일본의 프라이빗 온천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목욕을 마친 후 촛불을 훅 불어 끈 후 방으로 나왔습니다. 방 또한 미리 형광등을 꺼두고 스탠드 조명만을 켜 두었는데요. 그렇게 하니 공간이 부드럽게 전환되면서, 하루의 마무리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더 공감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위로의 의식을 충만히 즐기고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맛본 후로, 특별하게 피로를 풀고 싶을 때면 종종 이런 목욕 리추얼을 갖고 있습니다. 준비물은 단 두 개.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와 캔들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의식입니다. 간혹 좋아하는 바디워시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매일 쓰기 부담스럽기도 한데요. 샘플도 다 쓰면 하나 구매한 후 이렇게 특별한 목욕을 하고 싶을 때만 꺼내 써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지겠지요.
매일 보내야 하는 저녁의 목욕 시간을 하루동안 수고했던 나를 위로하고 보살펴 주는 시간으로 보내면 어떨까요? 일상 속 낭만은 특별한 순간이 아닌, 매일의 행위 속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