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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May 06. 2023

늘 다음 사람을 염두에 둡니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다음을 상상하는 것

일상 속에서 ‘앗!’하고 인상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령 공중화장실에 갔는데 변기 위에 오줌 방울이나 털이 묻어 있을 때, 또는 휴지통에서 휴지가 넘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을 때. 누구든 그런 일이 가끔씩 있지요. 상상만 해도 ‘으!‘ 소리가 절로 나면서 ‘어떤 놈이야!’ 외치고 싶어 집니다. 나 다음에 누군가가 올 거라는 걸 한 번만 다시 생각해도 그런 끝맺음이 털털한 행동은 좀처럼 할 수 없을 텐데요.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기 때문에, 다음 사람의 기분 따위는 잠깐 눈 감으면 모르는 일이 되기 때문에, 혹은 다 제치고 그저 귀찮기 때문에... 많은 이유로 종종 ’다음‘을 무시하고 있진 않은지요.


그런 저 또한 늘 뒤처리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샤워를 하고 나면 하수구에 뭉친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고 나와버리거나, 우산을 사용하고 접지 않은 채 대중교통을 타기도 했었지요. 특히 본가에 있으면 ‘엄마가 보면 치워주겠지’ 하는 안일한 어리광을 내세우며 더욱 게을러지기도 했습니다. 타인이 기분 나빠하거나 수고스러워지는 것보다 내가 당장 귀찮은 것이 우선이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다음 사람‘을 상상하게 되었는데요, 정확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나이가 들수록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이게 된 걸까요. 자연스레 ’타인을 기쁘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배려란 무엇일까요? 사전을 살펴보면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주 친절해집니다. 얼굴을 마주하면 아무래도 모질게 굴 수 없고, 이왕이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배려란 타인이 눈앞에 있을 때 때 벌어지는 마음씀의 행위 같지만, 저는 직접 도와주거나 보살피는 적극적인 행위만이 배려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려의 본질은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이 한 가지 단순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왔을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면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말끔히 뒤처리를 하고 나오게 됩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엔 ’종업원이 테이블을 치우러 왔을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 얼른 냅킨이라도 집어 내가 흘린 음식이나 얼룩 등을 깨끗이 닦게 되는 법이지요. 손님이 나가면 자리를 치우고 정리하는  종업원의 업무이니 굳이 깨끗이 치우고 나가지 않아도 잘못된 일은 아닐 테지만, 내가 떠나고  자리를 마주할 사람을  번쯤 상상하게 되는 것만으로   차이를 만듭니다.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거나,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다음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다 단순한 기분. 그것이 매순간 저를 조금 더 다정한 행동으로 이끕니다.


마음을 쓰는 것은, 다음을 염두에 두는 일입니다. 그걸 스스로 느끼게 된 이후에는 수시로 다음을 상상하고, 좀 더 다음 사람의 쾌적한 기분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세스의 처음 단계는, 나 다음에 올 사람의 만족스럽게 웃는 얼굴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미소를 지켜주고 싶어 어질러진 물건 하나라도 더 정리하고 싶어 집니다. 업무를 이어받을 동료를 생각하면 이전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파일의 이름을 알기 쉽게 바꿔두거나 포스트잇을 써 가며 별도의 표시를 남기고 싶어 지지요. 카페에서 음료를 다 마시면 (자리에 두고 가라는 별도의 말이 없는 한) 빈 컵과 그릇을 카운터에 가져다주기도 하고, 택배 기사님의 헛수고를 덜어주고 싶다면 더 디테일한 배송 정보를 남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그것만이 배려는 아닐 것입니다. 타인이 없을 때도 배려는 이루어집니다. 내가 간 다음을 상상하는 것. 이 자리에 올 다음 사람을 생각하는 것. 이왕이면 그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싶다는 하나의 작은 마음. 그 마음에서 비롯해 덧댄 작은 동작이 배려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좋은 다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어진다면, 우린 얼마나 쾌적한 서로 간의 다정한 연쇄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참, 다정한 마음은 상상력에서 온다고도 하지요. 이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 상상할 줄 아는 힘, 그것이 나를 조금 더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이 사회를 조금 더 다른 사회로 만들어 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일상 속의 배려는 그런 거창한 거대담론을 논하기에는 귀여운 수준일 테지만요. 그런 귀여운, 뿌듯한 작은 행동을 오늘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다음 사람의 미소를 지켜주고 싶은 일에는 일상 속 어떤 상황들이 있을지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깨끗이 먹고, 가져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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