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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May 01. 2023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놓습니다

늘 뒤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와 가족과 드라이브를 마친 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짐만 챙겨서 바로 카페에 갈 심산이었던 저는 현관에서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방으로 내달렸지요. 그때 뒤따라오던 엄마가 한소리를 했습니다. 신발을 정말 이렇게 놓을 거냐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사람이 항상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해. 신발을 벗을 때도 똥을 싸고 나올 때도.” 평소에는 잔소리를 하면 한 번쯤 장난스레 튕기고(?) 보는 성격이지만, 그 말만큼은 정말이지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맞아. 맞는 말이야.”하고 흔쾌히 맞장구를 쳤습니다. “시어머니 앞에서도 이렇게 벗을래?” 엄마가 한 소리 더 덧붙였을 때는 “흥, 난 결혼 안 할 거니까 시어머니가 없어“ 하고 철벽을 쳤지만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예의범절로 신발을 벗은 뒤엔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그 행위의 속뜻은 단순히 물건을 가지런히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늘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자신이 남긴 흔적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마치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쾌적하게 떠나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것에 서툴러 늘 엄마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넌 꼭 흔적을 남겨.“ 마치 헨델과 그레텔이 걸어가는 길마다 빵부스러기를 남기듯, 제가 지나간 길에는 머리카락이며 벗어던진 옷이 널브러지기 일쑤거든요.


뒤를 살펴보는 일은 비단 신발을 벗을 때만의 일이 아닙니다. 엄마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엔 꼭 남은 음식물을 하나의 그릇에 모두 덜고 그릇들을 모두 겹친 후 사용한 식기들은 한데 모아 가지런히 놓습니다. 종업원이 설거지하기 편하도록 마음을 쓴 작은 배려이지요. 마지막으로는 휴지나 물티슈로 책상을 가볍게 쓱쓱 닦아, 최대한 어질러진 흔적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자리를 정돈합니다. 이런 습관은 가장 친한 친구 E에게도 깃들어 있는 것이라, E와 외식을 할 때면 저도 저절로 손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E의 남자친구도 그런 E를 보고 배워, 식사를 마친 후엔 그릇과 테이블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하니 좋은 일입니다.


신발을 벗은 후 가지런히 두는 것, 밖에서 식사를 마친 후 그릇과 테이블을 정리하고 나오는 것은 무척 작은 행위입니다. 한 번 손을 움직이고 허리를 굽히는 수고로움만을 더하면 치를 수 있는 행위이지요. 그것들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일상이 엉망이 되거나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동작이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 작은 행동에서 그 사람의 깊이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자신의 바로 발밑 그리고 반경을 먼저 살필 줄 알면, 주변도 자연스럽게 챙길 줄 아는 세심한 사람이 되겠지요. 그러니 일상에서 크고 작은 꼬리를 잘 살펴봅시다. 아차, 하며 한 번쯤 뒤를 돌아보는 것이지요. 나도 모르게 엉망으로 만들고 만, 그림자 안 공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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