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다정한 예절
사람을 마주할수록 허물어뜨리는 것이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허물어뜨리다니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바로 사람의 마음, 정확히는 무장한 마음입니다. 그럴 생각이 없었더라도 우리는 무의식 중에 타인 앞에서 무장을 하고 맙니다. 특히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갈 뿐인 면식 없는 사람일수록 말이지요. 필요에 의해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할 때는 물론 누군가 툭툭 어깨를 건드려 말을 걸어올 때면 적이라도 마주하는 것마냥 꼿꼿이 긴장을 세우게 됩니다. 입꼬리만 올리면 끝나는 간단한 일 같지만, 얼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정말... 웃지 않고 사는구나‘. 그 생각을 했던 것은 한 달 전 백화점 팝업에 나가 고객을 응대하면서였습니다. 매대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면 다양한 생김새와 차림새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 저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심드렁하니 굳은 얼굴부터 찡그리는 게 습관이 된 탓에 미간에 주름이 진 얼굴까지... 새삼 이렇게 찬찬히 사람들의 일상 속 표정을 관찰할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요. 그때를 계기로 종종 사람들의 얼굴을 봅니다. 지하철에 앉아 휴대폰으로 재미있는 영상을 보는 사람도,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러 나온 어른도 무서우리만큼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물론 저도 다를 바 없었겠지만요.
하지만 백화점에서 고객을 응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 미소를 짓게 되었는데요. 그래야 하기 때문에 짓는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당신과 만나 뵈어 기쁩니다’라는 생각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던 몇 주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몇의 놀라운 순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순간, 열이면 아홉은 얼굴에 갑자기 부드러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화장실이 어디에 있냐는 등의 질문을 해 왔지만,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순간 한 순간에 얼음 녹듯 굳은 표정을 허물어뜨리고 부드럽게 웃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표정은 마치 뜻밖의 선물이라도 품에 안은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어서 저도 매 순간 놀라움의 연속이었고요. 이런 얼굴에 이토록 환한 표정이 숨어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톡 쏘는 탄산과도 같은 모양의 경쾌한 기쁨이 서린 얼굴들을 우표처럼 제 마음속에 하나씩 고이 수집해 두었습니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이런 말은 너무 자주 들어온 예스러운 속담이라 생각했는데 과연 옳은 말이더군요. 예상치도 않았는데 상대가 웃는 얼굴로 나를 마주해 준다면, 덩달아 웃어 보이지 않고 배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당했다! 이런 심정으로 그만 무장을 내려놓고 말랑말랑한 표정이 되어버리겠지요. 백화점에서의 일 외에도, 저희 회사엔 언제나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 주시는 한 분이 계시는데요. 그분과 계단에서 마주칠 때면 다른 분과 마주할 때보다 왜인지 저도 더 반가워 덩달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이렇게 간단하게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힘이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마법의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한 까닭일까요. 그 이후로는 손님의 입장이 되어 가게를 방문할 때에도 이왕이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려 노력합니다. 계산을 하며 카드를 주고받는 찰나에도 최대한 친절하게 응합니다. 먼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입장이란 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어쨌든 먼저 미소 지으면 상대의 얼굴에도 미소를 번지게 할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예 미소 짓는 얼굴이 내 모습의 디폴트값이 되는 것도 멋진 일일 것입니다.
영어에도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Fortune comes in by a merry gate'. 행운은 웃는 문으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타인의 마음의 문을 열고 싶다면, 먼저 나의 마음의 문을 ‘Merry gate', 즉 웃는 문으로 단장해 봅시다. 그 문으로 타인의 미소는 물론, 뜻밖의 선물과도 같은 기회나 행운이 함께 따라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미소를 짓는 일은 당장이라도 무일푼으로 갖출 수 있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가장 단순하고도 성실한 예절이자 나 자신을 지키는 품위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