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공명하는 나의 감각들
6월이 다가오면 옷장 속에 보관해 두었던 이불을 새로 꺼냅니다. 가을에서 겨울, 봄까지 이어지는 계절동안 덮었던 개나리색 커버의 솜이불은 거두고, 여름만을 위해 준비해 둔 얇은 흰 모달이불을 주섬주섬 꺼냅니다. 베개 커버도 녹색 체크무늬에서 광목으로 된 흰 천으로 바꾸고요.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하는 저만의 생활의 의식입니다.
계절이 바뀌면 집 안의 패브릭을 바꾸는 의식은 어릴 적 엄마로부터 배웠습니다. 소파, 쿠션, 커튼, 주방 창문의 레이스, 식탁보, 방석...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 안의 사물이 그에 어울리는 색과 패턴으로 하나둘씩 모습을 달리해갔는데요. 분홍색, 흰색, 노란색, 고동색... 제가 어른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제 취향에 맞춰 식탁보와 이불, 베개 커버를 바꿔왔습니다. 몸과 마음의 감각을 계절의 빛깔과 무게감에 맞춰 준비하는 소소한 DIY이지요. 올해부터는 식탁보를 깔지 않아도 되는 큰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어, 침대만 여름마다 새롭게 단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름에 쓰고 있는 것은 오돌토돌한 무늬로 짜인 모달이불인데요. 보들보들 피부에 닿는 감촉이 시원하고 부드러워 그야말로 여름에 무척 어울리는 이불입니다. 홑이불이라 아침에 이불정리를 할 때도 가볍게 펄럭이는 무게감이 홀가분하고, 덮을 땐 몸의 실루엣에 따라 그대로 피부에 사뿐히 감겨 오는 느낌이 산뜻합니다. 덮고 싶지 않은 날엔 그냥 이불 위에 드러누워도 되는데요. 얇기 때문에 등 아래 이불이 있다고 하여 특별히 배기지 않고, 다리만 올려두어도 적당히 시원한 감촉에 여름의 잠자리가 한결 쾌적합니다. 잠자리가 사나우면 종종 얼굴과 피부에 이불의 무늬가 찍히기도 하여 우스운 꼴을 마주하기도 하는데요. 그것마저도 여름에만 당하고 마는 귀여운 낙인 같아, 어릴 적의 추억처럼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단정하고 깨끗한 느낌을 배로 주기 위해 베개 커버도 똑같이 흰색으로 단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름에 더 쓰임이 좋은 광목은, 왜인지 차분한 느낌마저 줍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계절보다 여름의 침대가 가장 밋밋하고 심심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늘 기분 좋게 서늘하고 쾌적한 모습으로 집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름에 흰색이란 어째서 더욱 애틋하고 눈길이 가는 것일까요. 사물들이 더 고요해지고 단순해져 정신이 집중되고, 열기에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 듯합니다. 집 안의 사물을 흰색으로 바꿔주기만 해도 그 청초하고 청순한 감각에 집 안의 온도가 3도 정도는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거슬리는 게 없으니, 흐트러지고 어수선했던 감각이 기본으로 서서히 돌아갑니다. 여름에 더욱 빛을 발하는 흰색의 효용이려나요. 그렇게 여름 한 철동안, 저의 침대는 온통 하얀색으로 단순하고 단정해집니다.
사물의 색과 소재를 바꿔주는 습관은 집 안에 계절을 들이는 작은 의식입니다. 계절에 따른 색과 소재, 형태, 무늬의 효용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요. 어떤 색을 볼 때 조금 더 마음이 홀가분해지나요? 어떤 소재를 만질 때 따뜻한 정서를 느끼나요? 자신의 감각과 공명하는 사물의 모습을 찾아보세요. 계절마다 그 신비로운 매력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묵묵히 밥을 먹고, 부지런히 사부작거리다 보면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나가 있겠지요. 올여름엔, 흰 사물에 둘러싸인 채 또 한 계절 지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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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일상의 나다운 기본을 찾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일상 속에서 나다운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깨달음과 생활의 태도 등 삶을 보다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라이프마인드를 이야기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당신의 오늘의 기본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