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작고 가벼운 것들을 사랑해보세요
기본적으로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차림새가 홀가분해진다는 점인데요. 반팔티와 치마를 가볍게 걸쳐 입으면 집 앞에 나올 준비 완료. 발걸음이 사뿐해지고 공기를 두 팔로 가르며 걷는 느낌이 좋아 어깨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원래도 물건을 많이 넣고 다니는 편이 아니지만 여름엔 소지품을 더 덜어냅니다. 그렇게 추린 소지품은 아주 가볍고 작은, 손바닥만 한 천가방에 쏙 담깁니다.
특별히 계절에 구애받는 건 아니지만, 왜인지 이런 천가방은 여름에 자주 들고 다니게 됩니다. 넣은 물건이 정말 적으면 맨 것 같지도 않을 정도로 가벼운데요. 가뿐한 무게로 옆구리 쪽에 매달린 앙증맞은 느낌도, 뾰족하고 딱딱한 모서리가 없어 무해한 감각도 무척이나 기특하여, 작열하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내 옆을 지키는 이 펫 같은 사물을 다정히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이 됩니다.
여름의 생활은 작고 가벼운 것이 기특해지는 시간을 누리는 것인가 봅니다. 몸통을 덮쳐오는 큰 에코백이나 팔꿈치를 찌르는 무거운 가죽 가방보다 키링처럼 매달린 작은 천가방이, 크고 육중한 장우산보다 가방 속에 쏙 들어가는 앙증맞은 접이식 우산이, 큰 대접보다는 아담한 디저트 볼이 더 애틋해지지요. 일상 속에 여백을 두고 싶은 마음이, 다른 데도 아닌 사물과의 관계에서 솟아오르고 마는 오묘한 계절입니다.
저는 주말 오후에 카페에 갈 때 주로 작은 손가방을 맵니다. 지갑과 틴트, 책과 연필 그리고 일기장. 가방에 든 것은 이게 다입니다. 어깨에 가볍게 둘러매고서 사뿐한 발걸음으로 집 앞의 내리막길을 내려갑니다. 후줄근한 티셔츠와 나풀거리는 치마, 가벼운 가방을 걸치고 유유자적 골목을 걷는 <백만엔걸 스즈코>의 아오이 유우 마냥 팔을 기분 좋게 내두르면 즐거운 보폭이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이런 작은 손가방의 경우엔 밋밋한 디자인보다 귀여운 패턴이 있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아무리 단순한 옷차림으로 외출해도 가방 하나만으로 포인트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일부러 가방이 보이게끔 찍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더더욱 이 작은 사물이 여름날 기분 좋은 나들이를 증명하는 표식이 된 것만 같습니다. 여름에 간 소박한 여행마다 이 가방을 메고 있거든요. 아무것도 넣지 않을 땐 옷처럼 납작해지므로, 여행을 갈 때 사이드로 들고 가기에도 유용합니다.
일상 속에 딱 적당한 무게감을 아는 것. 그것은 기분 좋은 생활을 데려오는 작은 한 끗입니다. 여름에는 작고 가벼운 것들을 사랑해보세요. 들꽃 같이 앙증맞고, 토마토처럼 새콤한 매력이 있는 물건을 곁에 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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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일상의 나다운 기본을 찾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일상 속에서 나다운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소소한 깨달음과 생활의 태도 등 삶을 보다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는 라이프마인드를 이야기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당신의 오늘의 기본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