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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Aug 06. 2023

흰 반팔티는 더 신중하게 고릅니다

나에게 꼭 알맞는, 기본의 옷차림.

저는 원래 기본템을 잘 사지 못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마음먹고 쇼핑을 하고자 해도 ‘이 가격에 재미없는 기본템을 살 바에 디자인이 예쁜 걸 사겠어’라는 마음으로 늘 다른 것을 골랐습니다. 말하자면 흰 반팔티 같은 ‘기본템’은 딱히 투자하고 싶지 않은 것, 아무 데서나 몇 장에 만 원 또는 3+1으로 싸게 여러 벌 장만해 둘 뿐인 것쯤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 흰 반팔티 같은 기본의 아이템을 오히려 가장 신중하게, 값을 들이더라도 질 좋은 것으로 고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기본의 흰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을 보면 품격이 느껴집니다. 흰 반팔티라도 거리에서 한 장에 4,000원 하는 옷이 아닌, 좋은 소재와 정갈한 핏을 갖춘 것을 입은 사람을 보면 집 앞에 편하게 나온 사람처럼 보이는 게 아닌, 편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느껴집니다. 기본일수록 더 신중하게 나에게 더 알맞은 것으로,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정갈함과 품격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을 골라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나에게 꼭 맞는 질 좋은 흰 기본 반팔티를 꼭 장만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에게 조언도 구해 보았습니다. “아무 데서나 사지 말고 COS 같은 데에서 좋은 거 하나 사는 게 훨씬 나아“. 그 친구가 그날 입고 온 회색 반팔티는 어정쩡한 핏이나 길이, 저렴한 소재가 아니라 그 친구에게 너무 딱 붙지도 너무 헐렁하지도 않고 꼭 알맞게 들어맞아 보기 좋았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하고 기본으로 보이지만, 결코 ’대충 입고 나온‘ 패션이 아니라는 것을 딱 봐도 알 수 있었지요.


나에게 꼭 맞는 기본의 흰 반팔티를 사자, 하고 마음을 먹으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소재부터 소매의 통과 길이, 사이즈와 길이감까지 하나하나 저만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지요. 너무 뻣뻣하거나 너무 유연하지 않고 몸에 딱 부담 없이 걸쳐지는 소재, 목 부분이 너무 좁지 않을 것, 팔을 들어 올렸을 때 겨드랑이 부분이 보이지 않을 것, 팔뚝에 딱 달라붙지도 그러나 너무 넉넉하지도 않을 것, 핏도 마찬가지로 몸에 딱 달라붙지도 않지만 어느 정도 상체의 라인을 따라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드러날 것, 크롭은 지양하지만 바지 안에 넣어 입지 않아도 너무 허리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딱 적당한 길이감. 하지만 기본의 아이템인 만큼 특출 난 브랜드의 것을 사거나 너무 비싼 금액은 아닐 것. 이 모든 기준을 갖춘 기본의 흰 반팔티를 찾으려 하니,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보통의 예쁜 옷을 고르는 것보다 더 섬세하고 신중한 작업이었지요.


그렇게 여러 가게를 들락날락거린 결과, 마침내 객사의 거리에서 3만 원 대의 찾아 헤매던 딱 알맞는 흰 반팔티를 찾았습니다. 기본템에 3만 원을 쓰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인데요. 오히려 그동안 다른 예쁜 옷을 샀을 때보다 훨씬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차올랐습니다. 그때 산 반팔티는 출근을 할 때나 주말에 놀러 갈 때, 편하게 입어야 할 때 등 언제 어디서나 유용하게 입고 다닙니다. 기본템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가도 흠될 것이 없고, 어느 상황에서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름을 위한 기본. 흰 반팔티와 네이비색 반바지, 흰 폴로셔츠.


‘기본’은 그 어느 것도 상관없는 밋밋하고 평범한 것이 아닌, 딱 그것 하나만 있더라도 풍요롭고 완성된 존재감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개도 필요 없이, 가장 나에게 알맞는 것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 사람이 보여주는 ‘기본’은 그의 바탕을, 꾸밈없는 안목과 센스를 보여주는 통로입니다. 여름을 위한 흰 반팔티와 반바지, 정중한 자리를 위한 흰 셔츠와 자켓 등 나의 기본을 보여줄 수 있는 옷은 ‘기본이기에 아무 거나 저렴한 것으로’가 아닌 ‘기본이기에 적당히 질 좋고 나에게 꼭 맞는 것으로‘ 골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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