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대접했던 따뜻한 한 끼
최근 ‘위시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친구에게 한 끼 식사를 차려주었던 일이 있습니다. 혼자서 요리를 곧잘 해 먹는 편인데도, 누군가에게 선보인 것은 처음입니다. 친구와 합심하여 특정한 메뉴를 새롭게 도전해 만들어 먹었던 적은 있지만 오롯이 혼자서 요리해 평소 만들어 먹는 음식을 대접한 것은 처음인데요. 최근 들어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처음은 ‘위로의 식탁’이라고 해둘까요. 최근 슬픈 일이 생긴 S씨와 위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녀가 주문한 특별한 메뉴는 다름 아닌 ‘따신 밥’. 약속 날짜가 오기 전까지 어떤 음식들로 꾸릴까 고민하다 지극히 일상적이며 친근한, 따뜻한 추억이 생각날 법한 ‘집밥 같은’ 음식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만들어 먹어 제 손에도 익숙한 음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새롭게 도전하는 낯선 음식이 아닌, 내 손길이 배어 있는 친숙한 레시피야말로 S씨가 원하는 식사에 걸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꾸린 메뉴는 이렇습니다. 직접 지은 현미밥, 엄마가 보내 준 육수를 넣고 끓인 된장국, 양파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 칼집을 낸 소시지야채볶음, 본가에서부터 온 김치. 퇴근 후 마트에 들러 된장국에 넣을 애호박, 두부, 양파, 팽이버섯 그리고 비엔나소시지를 사들고, 두 팔 가득 안고서 집 앞의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와 있던 S씨가 저 멀리서 기쁘게 반겨주며 한걸음에 달려와 주더군요. 집에 도착해 S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지런히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실은 무척이나 오랜만에 차리는 밥상이라 제법 쩔쩔맸는데요. 2구뿐인 하이라이트로 국과 반찬 2개를 동시에 만드려니 정신이 없었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과연 맛있게 먹어줄까 마음을 졸였는데, 정말 맛있다며 함박웃음을 짓는 S씨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한적한 골목에 있는, 많은 메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단골들이 원하는 소박한 한 끼를 차려주는 작은 식당 같아요.”, “<심야식당>처럼요?” “맞아요(웃음)“.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는 동안 S씨는 국을 두 그릇이나 먹어주었습니다. 그 뿌듯함이 이루어말할 수 없었지요. 인생의 슬프고 어려운 순간에 맛있는 요리를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최근 다시 읽은 책의 한 문장처럼 S씨가 이 시간과 맛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나날을 한결 편안하게 맞이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약 열흘 뒤, 고등학교 친구 E가 하룻밤 자고 갔던 어느 주말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다시 한번 저의 ’필살 식탁‘을 차렸습니다. 한 번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때와 거의 똑같은 음식들로 차리게 되더군요.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계란말이에 양파를 다져 넣지 않고 소시지야채볶음 대신 냉동고에 있던 치킨너겟을 튀겨 레시피가 한층 간소해졌다는 점이지만요. 그 때문에 노란색 투성이인 밥상이 되었지만, E 또한 S씨처럼 국을 한 번 더 리필하며 무척이나 맛있게 먹어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얼마 전 제주 여행에서 얻어 온 메밀 티백을 끓여 차 한 잔을 마시며 사이좋게 책도 읽었습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마음 졸일 필요 없이 자신감을 갖고 내어줄 수 있는 식사, 그것을 ‘필살 식탁’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꼭 메뉴가 여러 개일 필요 없이 한 가지 메뉴여도 충분합니다.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복잡한 레시피가 아닌 단순한 레시피로, 물 흐르듯 가볍게 그러나 정성껏 만든 소박한 메뉴. 그런 메뉴를 사람마다 한 가지쯤 가지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종종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순간이 별안간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고심한 한 마디, 귀여운 선물도 좋지만 가끔씩은 따뜻한 한 끼로 마음을 전해봅시다. 대화와 함께 무르익는 시간이 고스란히 값진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인 가정이라도 식기와 수저 세트를 두 쌍 이상 구비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서너 쌍을 가지고 있어, 손님에게 직접 마음에 드는 행운의 그릇, 컵, 수저를 골라보라고 합니다. 대단할 것 없지만 위시식당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지요. 이상 저의 필살 식탁의 레시피를 간단하게 기록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필살 식탁’은 어떤 메뉴인가요?
<위시식당 차림표>
1. 양파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 : 계란물에 양파 반 개를 작게 다져 넣고 부친 계란말이입니다.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케첩을 함께 제공합니다.
2. 엄마가 보내준 육수와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 : 이름 그대로에 기호껏 애호박, 양파, 두부, 팽이버섯을 넣고 끓입니다.
3. 칼집 낸 비엔나소시지 볶음 : X자 표시로 여러 번 칼집을 낸 비엔나소시지에 양파를 곁들여 케첩, 간장, 설탕을 버무립니다. (욕심을 내자면 파프리카도 썰어 넣고 싶지만요)
4. 튀기기만 하면 되는 치킨너겟 : 냉동식품으로 된 것을 사서 한 끼에 6~7개 정도를 기름에 튀겨냅니다. 찍어 먹을 수 있도록 머스터드소스를 함께 제공합니다.
ps. 다음엔 또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며 어떤 메뉴들이 추가되어 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