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뭉근하게’ 해 보세요
며칠 훌쩍 여행을 다녀오거나 고작 이틀 정도 본가에 다녀오는 것만으로 일상의 리듬은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심심찮게 ’리셋‘을 위한 모드로 들어섭니다. 흔히 리셋 루틴이라고 하면 청소를 한다든가 한숨 푹 잔다든가 차를 마신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제시하지만, 과연 그것이 늘 효과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사람마다 본연의 리듬을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의식은 제각각이니까요.
’기본‘에 대한 이야기를 늘 탐구하는 저로서는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일이 중요하기에 리셋에 대해서도 자주 고민하곤 하는데요. 얼마 전 4일간의 제주 여행을 다녀온 뒤로 또 한 번 생활의 리듬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그러다 효과적인 리셋을 위한 단순한 법칙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일상의 행동을 시간을 들여 ’뭉근히‘ 하는 것입니다. 특정한 의식을 도장깨기 하듯 치르는 것이 아닌, 일상으로 복귀한 뒤 해야 하는 평소의 보통의 행동들을 평소와는 다른 속도와 밀도로 하는 것입니다.
‘뭉근히’의 뜻은 이렇습니다. ‘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하다‘. 저는 ‘뭉근히’라는 말을 들으면 냄비에 잼을 천천히 저으며 오랫동안 졸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리셋에는 바로 잼을 끓일 때와 같은 ’농후한 밀도‘와 ’천천한 속도감‘이 필요합니다. 리셋이 필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정보’를 처리하기 위함입니다. 비일상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온 낯선 감각과 기분,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할 여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눈앞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마치 슬라임을 당기듯 늘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평소에 하는 일’을 ‘평소보다 더 천천히 그리고 오래’ 하는 감각입니다.
보통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복귀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내팽겨쳐지다시피 일상에 놓입니다.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해서는 다짜고짜 ’일상으로!‘가 아닌, ’일상 속의 비일상‘이 먼저 필요합니다. 일상에서 하던 각자의 평범한 보통의 일을 하되, 그것을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법한 밀도와 속도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샤워를 한다고 합시다. 평소에는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바디워시로 쓱쓱 닦아 5분 만에 샤워를 끝내곤 했다면, 리셋을 할 때는 10분~20분을 들여 ‘뭉근히’ 샤워해 봅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천천히 예열하고 몸 곳곳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오랫동안 문지르고 수건으로 휙휙 물기를 닦지 않고 천천히 쓰다듬으며 닦아 봅시다. 독서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엔 2-30분 정도 짤막하게 읽다가 책을 덮곤 했다면, 1-2시간 정도 편안한 소파에 앉아 ‘뭉근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뭉근히 일기를 써도 좋고, 뭉근히 커피를 마셔도 좋고, 뭉근히 식사를 준비해도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 평소에 부지런히 더 해냈을 다른 일을 조금 제쳐두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놓인 일상의 일을 하나하나 ’잼을 졸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오랫동안 하면서 천천히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낯선 곳에서 여행을 하면 평소보다 하루가 긴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많고 낯선 정보를 처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아무리 편안하고 익숙한 곳에 머물다 왔더라도 평소와는 다른 정보들을 맞닥뜨리게 되지요. 그 정보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위해서는 다이빙하듯 일상 속으로 뛰어드는 대신 ‘비일상의 속도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며 일상의 감각을 똑똑 노크하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비유하자면 과일과 물, 설탕 등 날 것의 재료들을 너무 작지도 세지도 않은 불로 차분히 졸이면서 점점 달콤하고 부드러운 잼의 형태로 만들어 가듯, 낯선 정보와 감각들로 마구 뒤엉킨 일상을 차분히 풀어내는 것입니다.
새 계절로 들어서며 슬금슬금 리셋이 또 한 번 필요해진 당신이라면, 눈앞에 놓인 오늘의 보통의 할 일을 평소보다 ’뭉근히‘ 잼을 끓이듯 해 보면 어떨까요? 어느덧 얌전한 속도로 일상 속에 안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