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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Sep 16. 2023

퇴근 후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더 사랑하는 법

날씨가 선선해졌습니다. 어느덧 밤이 되면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 그야말로 산책하기 딱 좋은 시기이지요. 일주일에 세 번은 퇴근 후 회사 근처의 체육관에서 필라테스를 하고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데요. 바로 집으로 귀가하는 어느 목요일 저녁, 문득 ‘오랜만에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그 길로 에어팟을 끼고 집 앞의 산책길로 나와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기 시작한 것이, ’퇴근 후 러닝‘ 루틴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이 산책길을 달리는 건 처음이 아닙니다. 입사하기 전인 반년 전 겨울, 저는 매일 오후 4시나 저녁이 되면 이 길로 40분씩 조깅을 하러 나오곤 했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 그동안 엄두 내지 못했던 운동을 하고 싶었기도 하고,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취준의 기간 동안 마음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었던 까닭도 있었지요. 하지만 오랜만에 달려 나간 그날, 입사 후 한 번도 저녁에 산책을 나온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름 퇴근 후에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균형 잡힌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한때 좋아했던 이 루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요! 퇴근 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한가롭게 걸을 시간을 가져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달리기를 잊고 있던 그 사이 새로 산 러닝화를 신고 달렸습니다. 힘차게 달리는 두 발에 푹신하고 유연한 감각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의욕을 불타오르게 하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 사이로 힘껏 내달리다 보니 이유 모를 해방감까지 느껴져 기쁘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분마저 들더군요. 나도 모르는 사이 온몸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책임과 걱정을 싹 날려버리는 느낌으로, 여느 때보다 큼직하고 재빠른 보폭으로 산책길을 달렸습니다. 또 잠시 걷는 구간에서는 파리의 골목에서 흘러나올 법한 재즈를 들으며 초가을 밤 낭만에 젖어 보기도 하고요. 40분가량 소요되는 이 ‘퇴근 후 러닝’ 시간 동안 저는 이루고 싶은 꿈을 상상하며 벅차오르기도 하고 조만간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오늘 동료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거나 평소에 진득하게 곱씹고 싶었던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한창 하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걷다 보면 반갑게도 고양이를 마주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달리고 돌아오다 보면, 뭔가가 바뀐 느낌이 듭니다. 달리는 내내 슥슥 바뀌어가던 풍경 때문일까요. 달리기 전과 후의 마음가짐도, 몸의 상태도, 더 나아가 나의 미래도 더 좋은 쪽으로 바뀐 것 같은 고양감이 찾아듭니다. 상기된 두 볼 가득 차오른 에너지로, 뭐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기 시작하지요. 그렇게 매일 나를 건강하고 낭만적인 방식으로 정화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뿐일까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다리에 전에 없던 근육이 생겨 훨씬 몸이 단단해졌습니다. 마음도 상쾌해지고 몸도 튼튼해지는 일석이조인 습관이지요.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이어집니다. 그 생각들을 집에 가만히 누워 굴리지 말고, 밖으로 나와 달려봅시다. 달리고 걸으며 그 생각들을 곱씹고 파고들고 때로는 떨쳐냅시다. 그렇게 남길 것만 남기고 찌꺼기는 버리는, 나만의 활기차고 낭만적인 정화 의식을 해 봅시다. 퇴근 후의 저녁이 한층 더 설레고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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