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에 꾸밈은 필요 없으니까요
글이 예뻐지고 있다. 종종 제가 보낸 메시지나 답글을 보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글이 과하게 반짝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문장마다 찍혀 있는 이모티콘입니다. 다정하고 산뜻하게 적어 내려간 문장 사이사이 하트라든가, 네잎클로버, 평화의 비둘기가 박혀 있을 땐 간혹 이런 생각이 듭니다. 기껏 정성껏 적은 말이 이모티콘에 '절여진' 것 같다고요.
그런 나날 속에서 가끔 이모티콘 하나 없이 활자로만 쓰인 문자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잠시 멈추고 곰곰히 바라보게 됩니다. 일순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서서히 문장 뒤의 사람의 표정이 보입니다. 성격은 어떤지 말투는 어떤지, 한 사람의 '말씨'가 고스란히 느껴져 오히려 기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모티콘에 의지하는 이유는 오해를 줄이고 싶다는 사려 깊은 마음입니다. 행여 차갑게 보일까 노심초사하며 글줄 사이사이를 장식 투성이로 만듭니다. 어떤 이모티콘을 붙이지? 온점 대신 느낌표를 붙일까? 예의 바르고 상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은 어여쁘기도 합니다. 그렇듯 나의 말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해 주는 이모티콘은 감사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마음의 표현들을 대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다, 이 말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이모티콘으로 해결합니다. 민망할 땐 땀방울을 흘리는 표정으로 얼버무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쁘다는 말을, 민망하다는 말을, 감사하다는 말을, 기대된다는 말을, 서운하다는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요? 많은 사람이 편지를 쓰기 어려워하는 이유도 평소 이모티콘으로 탐스럽게 부풀렸던 말을 오롯이 자신의 언어로만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모티콘을 적절히 덧붙여 대화를 화사하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감정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공들여 고민하는 법 없이 늘 간편히 얼버무리고 만다면 사회 전체의 말주머니가 빈약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잃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말씨 뿐 아니라, 문장 뒤에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실감 즉,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정중한 태도가 아닐까요?
편지를 쓰듯이 글을 쓴다, 답글을 단다, 문자를 보낸다는 것은 나의 말 이외에 다른 것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으로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언어적 지구력을 소중히 길러나가고 싶습니다. 풍부한 단어를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점자를 더듬어 의미를 찾아갈 수 있듯, 문장 뒤의 사람을 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세심히 고민하고 더듬어 가며 제대로 말해 봅시다. 요즘은 이모티콘을 쓰지 않고 문자를 보내는 연습을 해 보는 중입니다.
진심을 적었다면 꾸밈은 필요 없습니다.
내가 고른 단어를 믿고, 온점을 찍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