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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태(態)를 존중합니다

일상의 레이아웃을 디자인합니다

by 위시

어느 날 수건을 걸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고로 물건에는 태(態)가 있어, 그 태를 존중하며 다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생활의 기본이라는 것을요. 갑자기 무슨 말일까요. 한 줄기 볕이 스윽 들듯 떠오른 생각을 소중히 곱씹으며 수건의 모서리를 맞춰 걸고서 욕실을 걸어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수건은 네모납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양쪽을 맞추거나 모서리와 모서리를 만나게 하면 어딘가 튀어나오거나 어긋나는 일 없이 보기 좋은 모양이 됩니다. 그렇기에 수건은 고유의 네모난 형태를 존중해 가지런히 접거나 걸면 아름답고 단정한 장면을 만듭니다.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뒤 수건을 모서리를 맞추어 가지런히 걸어두는 일. 물건의 태를 존중하는 생활에는 가지런함의 미학이 깃듭니다.


마찬가지로 손수건은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접어 원래의 큰 정사각형에서 4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정사각형을 만들면 손에 쥐기에도 가방에 넣기에도 알맞은 모양새가 됩니다. 얇고 판판한 태를 가진 책은 책등이 보이게 하여 차곡차곡 쌓거나 옆으로 차례대로 세워 꽂고, 높이가 각각 다른 물건이므로 높낮이에 따라 순서대로 꽂으면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안경을 닦을 때는 안경닦이를 쥐고 직선 형태로 가로 세로 빡빡 문지르는 것이 아니라 안경알의 둥근 모양새를 따라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닦을 때 손짓이 훨씬 고와 보입니다.


태(態)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사전에 의하면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라는 뜻입니다. 일상의 동작은 물건의 상태를 의식하는 데에서 이루어집니다. 일종의 종이접기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종이접기는 네모난 종이와 종이를 접으면서 생기는 무수한 세모와 다각형을 따라 보기 좋은 모양새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종이에는 그에 따른 정교한 주름이 남습니다.


아무렇게나 걸어 둔 수건, 널브러뜨려 놓은 옷가지, 굴러다니는 연필, 쓰러진 책탑, 뭉쳐진 이불⋯. 고유의 태를 존중하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물건을 다루면 나의 생활에도 고스란히 곱지 않은 주름이 남습니다. 물건이 고유한 태를 잃어버린 풍경은 날카롭고 소란스럽습니다. 네모난 책상 위에 공책을 가지런히 둔다, 둥그런 식탁 한가운데에 꽃병을 둔다, 액자에 사진을 잘 맞춰 넣는다 이렇듯 물건의 태를 존중하는 생활은 알고 보면 치밀한 디자인의 영역입니다.


셔츠의 생김새에 따라 다리미를 문지르듯이, 촘촘한 빗으로 머리카락을 곧게 빗어 내리듯이, 마룻바닥의 결을 따라 빗자루를 쓸듯이, 담요를 네모나게 접어 두듯이, 스웨터를 접어 켜켜이 서랍에 넣어 두듯이, 양말을 돌돌 말아 포개어 두듯이, 일상의 물건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며 생활의 풍경을 가지런히 만들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봅시다.


접는다. 꽂는다. 쌓는다. 꼽는다. 생활의 모든 크고 작은 동작은 고유의 태를 존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모든 것이 놓일 풍경을 넓게 바라보고, 일상이라는 레이아웃을 세심하게 디자인합니다. 손은, 그저 그 위에 살포시 포개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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