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특별한 물건들로
제게 첫 장화와 양산이 생겼습니다. 여름을 맞이하기 위한 소소한 준비입니다. 초여름의 어느 날, 친구를 만났다가 ”이제 양산은 필수야. 꼭 바깥쪽은 흰색, 안쪽은 검은색인 걸로 사야 해”라는 말을 듣고 WPC 사의 접이식 양산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또 마침 타이밍 좋게 평소 존경하던 디자이너와 콜라보를 한 레인부츠도 샀습니다. 장마와 뜨거운 햇살을 막아 줄 다정한 물건들의 쓰임을 애써 모른 척해 왔는데 올해는 여름을 날 준비를 잘 갖춘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며칠 전에는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서니 입구에 시원한 여름나기를 위한 다다미 매트와 서큘레이터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아, 여름이구나”하는 설렘이 또 한 번 다가왔습니다.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틋하게도 사람들은 ‘한 철의 물건’들로 생활에 대한 애정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고요. 여름이 오면 장마와 무더위에 마냥 투덜거리면서도 그 성가심을 감싸 안고 친절하게 마중 나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저는 주변에서 하나둘씩 장화를 신고 양산을 쓰는 것을 보면서도 별 흥미가 동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의외로 그런 데서 조금 둔감해 비에 신발이 젖으면 ‘젖었구나‘, 햇빛에 살갗이 따가우면 ’찌는 듯 덥구나‘ 하고 마는 편입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며 마주치는 소소한 성가심을 지나치지 않고 그에 맞는 물건들의 도움을 적절히 받는 것이 어쩌면 생활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한 종류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얼마 신지 않을 장화를 위해 1년 내내 신발장 한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것. 그리고 비 오는 날이면 기다렸다는 듯 꺼내어 꼬박꼬박 신는 것. 햇빛이 강한 날이면 가방 속에 양산을 챙기고 외출하는 것. 냉감 이불로 바꾸고 선풍기를 장만하는 것. 이러한 행위들은 사실 자신의 생활에 대한 세심한 애정이 없으면 큰 품이 드는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생활에 대한 측은지심을 나름 다양한 물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부지런히 보듬어 온 것이 아닐까요.
비가 오면 장화를,불타는 햇살에는 양산을 쓸 줄 몰랐던 저는 그동안 물건들이 건네는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싶어 조금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생활(生活)이란, 이름처럼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계절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넓게 바라보고 내 주변에 존재하는 생명이나 물건들과 때에 맞게 다양하게 교감하는 과정에서 생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살포시 생겨나는 법입니다. 계절이 지나며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변화와 성가심에 유연하게 때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중 나가고 싶습니다.
또 여름입니다. 여러분은 여름을 어떻게 마중 나가고 있나요? 주변을 둘러보면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는 친절하고 유용한 ‘한 철의 물건’이 곁에 있을지 모릅니다.
마침 오늘은 장마의 시작이에요. 고이 준비해 두었던 장화를 첫 개시한 날입니다. 다소 무겁지만 귀여운 이 장화와 이제부터 한 철 함께 지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