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기분 좋은 식사를 하는 법
저의 식단은 별 일이 없을 땐 늘 닭가슴살 플레이트입니다. 큰 보울에 닭가슴살 한 개와 스크램플 에그 2개 분, 토마토 다섯 알. 그리고 현미밥. 여기에 꼭 곁들이는 것은 저의 시그니처 샐러드입니다. 시그니처라곤 하나 단순하기 짝이 없습니다. 양상추에 올리브유 한 스푼. 그 위에 후추를 뿌리는 것으로 끝입니다.
그 샐러드에 뿌리는 올리브유를 얼마 전에 바꿨습니다. 원래는 집 앞 마트에서 일명 ‘가장 가성비 좋은’ 올리브유를 구매했습니다. 여느 마트에 가도 늘어서 있는 페트 재질의 병, 올리브 그림이 새겨진 디자인에 이름만 바꿔 ‘카놀라유’, ‘해바라기씨유’, ‘포도씨유’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는 저렴한 국내 브랜드의 것으로요. 종종 1+1이라도 하면 횡재한 듯한 기분으로 두 개씩 손에 들고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1+1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벤트를 하지 않을 땐 가격이 턱없이 비싸게 느껴지더군요. “이 정도면 쿠팡에서 더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의 스크롤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제품을 둘러보다 ‘조금 더 좋은 거 써도 좋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겨 그만 더 비싼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새롭게 구매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첫 개시. 여느 때처럼 양상추 위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후추를 곁들여 섞었습니다. 한 입을 먹은 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입 안에 화사하고 싱그러운 풍미가 퍼지면서 양상추가 가진 고유의 푸릇푸릇한 느낌이 더 살아나고, 씹어 먹을 때마다 올리브유의 여운이 부드럽게 어우러졌습니다. 메뉴 구성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변화였습니다.
식사 시간이 한층 포롱포롱해졌다고 할까요. ‘포롱포롱’이란 말의 뜻이 눈빛이 반짝이고 정신이 맑고 또렷한 모양이라고 하니, 딱 맞는 느낌입니다. 고작 올리브유를 바꾼 것뿐인데 특별할 것 없는 저녁식사가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요. 새삼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작은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풍미를 지녔는지에 따라 요리 전체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고 완성도를 높이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대개 의외로 우리가 하이라이트라 여기지 않는, 기본적인 음식이 그러한 음식입니다. 기름이나 쌀 같은 것이 아닐까요? 대부분의 경우 기름은 팬에 둘러 음식을 볶거나 튀길 수만 있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쌀은 밥으로 잘 지어지기만 하면 되고요.
하지만 좋은 기름으로 볶은 요리, 좋은 쌀로 지은 밥은 다릅니다. 밥 한 숟갈을 먹어도 기분이 좋고 다 먹은 후에도 여운이 남습니다. 처음 자취를 할 때 아무 쌀이면 좋다고 생각해 사들였는데, 고향에서 올라온 엄마가 밥을 먹고서 ”이런 쌀은 못 써. 쌀만큼은 좋은 거 먹어.“ 라고 하고서는 몇 주 후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쌀을 한 포대기 보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다는 것은 재료의 ’종류‘를 먹는 것이 아니라 ’맛‘을 먹는 것입니다. 어떤 음식을 만드는 데 닭가슴살, 올리브유, 후추가 필요하다고 해서 말 그대로 닭가슴살, 올리브유, 후추를 준비하면 된다고 여기면 그것은 ’레시피적 사고’가 아닐까요? 재료를 모아 구성할 수 있으면 된다, 즉 ‘종류’에만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올리브유이기만 하면 뭐든 좋다는 마음이 되어 가장 저렴한 것으로 고르고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요리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름표’가 아니라 ‘맛’입니다. 요리란 ‘맛’끼리의 만남입니다. 맛은 추상적이기에 마트에서 진열된 제품만 보고서는 알 수 없어 가격표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생활에는 종종 식재료가 각각 어떤 맛을 가지고 있을지 살펴보고 먹어 보는 생생한 탐험이 필요합니다. 사실 올리브유를 조금 더 좋은 것으로 고르고, 쌀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고른다고 크게 돈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더 비싼 커피나 치킨은 쉽게 사 먹으면서요!)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단순히 ‘첼로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첼로를 잘 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찬사지로 좋은 요리를 위해서는 ‘조금 더 향미 좋은’ 식재료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일상 속 작은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조금 더 좋은 올리브유 같은 것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레시피적 사고’가 아닌 ‘향미적 사고‘를 들여 보세요. 냉장고 속에서 어떤 음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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