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 달에 한 번 낯선 동네 '먼슬리 트립'

정말로 우리를 낯설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익숙한 행복들

by 위시

일상을 더 나답게! 더 즐겁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다양한 리추얼을 제안합니다.


리추얼 앤솔로지 #4
<먼슬리 트립>


우리의 일상은 변화를 요구한다. 매일 다니는 출근길, 매일 가는 집 앞 카페, 매일 보는 버스 밖 풍경이 아닌 다른 골목과 풍경을 마주하고 가 보지 않은 카페를 가는 신선한 즐거움이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일시정지를 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낯섦'이다.


우린 일상의 낯섦을 즐기기 위해 주로 여행을 간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이국으로 가 귀에 익지 않은 언어를 듣고, 생소한 생김새의 사람들을 마주하고, 먹어 보지 못한 근사한 음식을 맛보고 환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풍경을 마주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우리는 더이상 자유롭게 나라 밖으로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틈 타 국내로 눈을 돌려보는 거다. 국내는 어딜 가나 다 비슷비슷하고 새로운 걸 경험한다는 느낌이 없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낯섦은 거창한 게 아니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캐리어나 배낭에 짐을 거하게 싸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뒤에 훌쩍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 1~2시간, 가까운 근교에 나들이를 가는 것도 여행이다. 어딜 가든 비슷비슷한 간판 똑같은 골목, 다를 것 없는 먹거리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그것들을 직접 경험할 자신의 감성과 감각을 분명 과소평가하는 거나 다름없다. 분명 가 보면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 분명 우리는 직접 그 안에 있을 때,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새롭게 느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 권태로워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낯선 동네를 방문하는 리추얼 '먼슬리 트립'을 제안한다. 말그대로 여태껏 가 보지 못했던 도시를 가보는 것! 이 리추얼을 계획한 이후 두달간 찾아 간 도시와, 그 여정의 모습을 짧게 공유하려 한다.


My Monthly Trip
2월 : 인천



고등학교 친구가 어느날 자신의 동기 중에 나와 정말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있다고 했다. 언젠가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브이로그를 시작하니 이런 연락이 왔다.


"야 현지가 과제도 내팽겨치고 네 영상만 봐."


그길로 소개 받아 2020년 1월에 처음 만나게 된 친구가 바로 현지다. 그러고 나서 여름쯤 또 한 번 보고, 통 못 보던 와중에 현지가 개강을 앞두기 전에 또 한 번 보고 싶어 약속을 잡았다. 정작 우리 둘을 매개해 준 은지는 본가에 내려가고 없었다. 우리 둘만 만나는 첫 약속이었다.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2.41.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2.59.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0.26.png 유튜브 <소소위시WISHLOG>


이날은 인턴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나서 처음으로 월차를 낸 날이기도 했다. 남들 다 업무 보고 있을 시간에 놀러나와 커피를 마시며 힐링을 할 수 있다니. 주말에 노는 것과는 또 다른 유쾌함이다.


7D5D48FB-DB18-4134-9A59-F2B895F193D5 2.JPG
IMG_3201.jpg
IMG_3213.jpg


인천에 온 김에 들르고 싶었던 소품숍과 독립서점을 들린 후, 가장 궁금했던 현지의 자취방에 갔다. SNS 자취 인테리어 계정에서 엄청난 뷰를 어필하며 좋아요 수 1만 개를 훌쩍 넘은 스타집이다.


뷰도 뷰고 시설도 시설이지만 가장 부러운 점은 역시 친구와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 둘을 소개해 준 친구도 이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친한 친구와 같은 건물 다른 방에 사는 게 나의 로망이다. 나 같으면 저녁마다 같이 맛있는 거 먹자로 불러내거나 산책 나갈 것 같은데, 이 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저마다의 삶이 바빠 생각보다 자주 만나지 못한다고.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3.56.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4.35.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5.22.png 유튜브 <소소위시WISHLOG>


현지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중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나에게 연애의 기억이라곤 철 없을 미성년 학창시절이 마지막. 이제 어느 정도 사랑이란 게 뭔지, 연애란 게 어떤 건지 알 정도로 머리가 자라고 나서는 연애 경험이 없다. 굳이 연애에 목 매는 것도 아니고 '솔로'라는 개념에 대한 어떤 자격지심 같은 것도 없지만,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인생에서 정말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감정인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삶이었다. 분명 사랑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는 엄청나게 다를 텐데. 사랑 앞에서 내가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도 궁금하다. 그런 것들을 모르는 삶과 충분히 경험한 삶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중요한 경험 하나를 빠뜨린 채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현지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될 줄 몰랐지만 같은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을 줄이야.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5.44.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1.58.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6.07.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6.33.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6.16.pn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7.40.png 유튜브 <소소위시WISHLOG>
F917C772-FE3B-40AC-90C9-6FFBEA37C5E7.JPG
1F6FFCC3-E8BD-4AC8-B53C-3B522766E74B.JPG
C84CB847-CE75-4A5A-92CD-5B8A07F1B22C.JPG
스크린샷 2021-03-22 오후 7.08.07.png 유튜브 <소소위시WISHLOG>
IMG_7407.JPG


또 헤어지기 전에 나눈 말. 우린 자신감이 조금 부족할 뿐 자존감은 높다고. (어쩌면 INFJ 종특일 수도 있겠다는 과몰입 이야기를 하면서...)


"난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해. 나 같은 남자만 만나고 싶어. 딱 나 같은 남자. 내가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해."


둘이 정말 톳시 하나 안 틀리고 같은 발언을 했다. 우리가 잘 맞는 거야? 아니면 혹시 INFJ가 그런거야?

현지야 우리, 부디 딱 우리 같은 남자만 만나서 좋은 연애 해 보자.





My Monthly Trip
3월 : 수원


2월의 인천에 이어, 3월에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수원을 떠올렸다. 수원행 결정 후 바로 한 일은, 수원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지연이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나 수원 가서 놀 건데, 같이 놀래? 하고. 인천에서 대학을 다니는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 은지도 불렀다. 서울, 인천, 수원. 수도권 삼각형을 이루는 우리 셋. 누구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일상을 지키면서, 소소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세 사람이다.


만나기로 한 토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냥 다음에 만나자고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만남을 사수했다.


"만약 비 오더라도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카페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그럴까? 좋아."

"흐린 날 집에 혼자 있어봤자 우울하기만 해. 흐린 날일수록 만나서 즐겁게 놀아야 해."

"맞아맞아!"


스크린샷 2021-03-26 오후 6.10.02.png


원래 가려던 음식점에 가니 개인 사정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그 탓에 다시 또 버스를 타고 다른 음식점에 왔다. 하필 비도 오는 날에 수고롭지만 우리 둘 다 일일히 불평하지 않는 타입. 즐겁게 메뉴를 고민하고 정말 맛있다고 입을 놀리며 후딱 먹었다.


"난 막입이라 뭘 먹어도 다 맛있어."

"나도."


IMG_8264.JPG
IMG_8265.JPG
IMG_8271.JPG
스크린샷 2021-03-26 오후 6.05.57.png


지연이와 만나면 요새는 어떤 게 진짜 행복이냐는 대화를 나눈다. 그거에 대해선 우리 둘 다 의견이 같다.


"진짜 행복 뭐 있어.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 나누고. 이게 행복이지. 딴 거 다 필요 없어."


"예전엔 바쁘면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잘 안 잡았어. 과제 해야지. 뭐 해야지, 하면서. 근데 요즘은 바쁠수록 일부러 더 만나. 더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 왜 그동안 날 힘들게 하는 것에는 일부러 시간을 냈으면서, 정작 날 위해서는 한 번도 시간을 내려하지 없었을까. 이젠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


서로 이런 얘기를 했다.


IMG_8288.JPG
IMG_8289.JPG
IMG_8292.JPG


IMG_8275.JPG
IMG_8286.JPG
IMG_8279.JPG
IMG_8281.JPG
IMG_8283.JPG
IMG_8287.JPG
IMG_8285.JPG






먼슬리 트립을 두 번 겪고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반복된다는 것.

어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즐거움을 얻고자 기획한 먼슬리 트립인데 또 반복의 연속이라니?


위의 사진들을 잘 훑어보면 똑같은 레퍼토리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고, 내가 좋아하는 독립 서점이나 소품숍 등 그 동네의 예쁜 스폿을 들리고,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꼭 굳이 먼 동네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먼슬리 트립에는 항상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였다.


먼슬리트립을 기획할 때만 해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설정은 없었다. 나 혼자 이곳저곳 돌아다닐 모습을 상상했지, 꼭 누군가와 함께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인천에 이어 수원까지 공교롭게도 두 먼슬리 트립 누군가와 함께하게 된 건 그저 우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번의 먼슬리 트립을 하며, 결국 나의 일상을 낯설게 해주는 것, 나를 새롭게 즐겁게 해주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만나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그 시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동네까지 벗어나면서 얻고자 했던 즐거움 또한 결국 평소처럼 맛있는 걸 먹고 카페를 가고 재밌는 스폿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사소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 루트들이 내게 매번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먼슬리 트립도 이런 레파토리로 흘러가리라는 걸 알았다. 내가 먼슬리 트립으로 방문하려고 계획해 놓은 도시들의 리스트를 보면 이제는 '거긴 얼마나 멋질까? 어떤 좋은 장소들이 있을까?'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선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기대한다. 앞으로 이어질 모든 먼슬리 트립에 항상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는 건 아닐 테지만, 이제 난 다른 동네에 가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어떤 것들일지 잘 안다. 그곳에만 존재하는 어떤 멋진 것들이 아닌,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불러 모을 익숙한 행복이라는 것을.


그렇게 또 난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4월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고향이자, 또 내가 좋아하는 언니의 유년시절이 새겨진 동네 '남양주'를 찾아갈 예정이다. 난 남양주에 어떤 멋진 곳이 있는지,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은 동네라는 것과 그곳에서 느낄 거라 기대하는 아주 작은, 익숙한 행복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흐린 날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 '클라우드 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