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기분 좋은 것을 고릅니다

풍요로움의 디테일

by 위시

얼마 전에 안경닦이를 하나 샀습니다. 안경을 쓴 지 어느덧 15년이 되어가는데, 제 돈 주고 안경닦이를 사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안경닦이는 굳이 돈을 쓸 것 없이 근처 안경점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안경닦이를 가방에서 꺼내다, 문득 그동안 든 적 없던 의문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왜 지갑이나 핸드크림 같은 것은 마음에 드는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는데, 안경닦이는 아무거나 사용하고 있지? 하고요. 그동안 안경점 로고가 박혀 있는 다소 촌스러운 색감의 안경닦이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안경닦이는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이유로 대충 집에 나뒹구는 것을 들고 다녔던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돈을 쓰면서까지 취향을 고집할만한 부류의 물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금방 단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경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만큼은 안경닦이란, 지갑만큼이나 가방 속에 꼭 챙기고 다녀야 할,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귀중한 물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에 미치니, 매일 쓰는 일상의 물건에 취향의 비용을 조금 투자하는 것 정도는 전혀 사치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생각을 하던 작년 가을, 성수동의 한 편집숍에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안경닦이를 발견해 구입한 후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작 4천 원을 투자했을 뿐인데, 안경을 닦을 때마다 전에 없던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낍니다. 일상의 작은 디테일이 조금 풍요로워졌을 뿐인데, 스스로를 대접하는 느낌이 듭니다. 세련되게 보이고 싶은 상대 앞에서 안경닦이를 꺼낼 때나 누구에게 빌려줄 때도, 이제 안경점 로고가 박힌 안경닦이에 일일이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풍요로움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 오는 것이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풍요라고 하면 넉넉하고 거대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일상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아주 작은 차이는 사소한 부분에서의 풍요로움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별 것 아니라고 여기기 쉬운 것에도 그 사람만의 시선과 취향이 녹아 있을 때, 그러한 디테일이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욕실 세면대 한편에 두는 핸드워시를 떠올려 봅시다. 핸드워시는 손을 씻을 때마다 사용하는 평범한 일용품입니다. ‘손만 제대로 씻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저렴한 제품으로 대충 구비해 두는 사람이 아무래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일상이 흘러가는 데는 별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핸드워시는 일과를 마친 후 집에 돌아온 자신을 가장 먼저 마중 나오는 위로와 환대의 물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좋아하는 브랜드의 향이 나를 반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어떤 것이든 괜찮지만, 이왕이면 나를 더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것으로’라는 마음가짐을 지니면, 집 안의 물건도 나의 생활도 분명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평소 요리를 즐겨하거나 주방 살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설거지용 수세미에 작은 풍요로움을 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막 쓰다 교체할 소모품이라고만 생각하며 최대한 저렴한 제품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촉감의 수세미를 부엌에 둔다면 볼 때마다 기분이 좋고 설거지하는 시간도 한층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일상의 아주 작은 디테일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가꾸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한층 풍요로워집니다.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을 죄다 질 좋고 마음에 드는 브랜드의 물건으로 바꾸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쓸데없이 부리는 사치가 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내 일상의 루틴에 있어서 중요하고 나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부분을 인식하여, 그것을 ‘이왕이면 좀 더 기분 좋은 것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자세입니다. 누구에게는 그것이 핸드워시일 수도, 안경닦이일 수도, 양치 컵일 수도 있겠지요. 꼭 물건이 아닐 수도 있고요! 당신에게 있어서 일상 속 풍요의 디테일은 어디에 있나요?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오늘의 중심을 지키는 나다운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쾌적하다는 것은 부드럽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