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를 둘러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소중한 마음들로 영위되는 일상

by 위시

대학시절에는 인천에 살던 10년 지기 친구가 서울로 이사 오면서부터 저의 냉장고의 한 칸은 당최 비워져 본 일이 없습니다. 특별히 살림을 하는 친구도 아닌데, 저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반찬이나 과일이 그의 손에 듬뿍 들려오거든요. 저번 가을에는 뽁뽁이 주머니에 한가득 담은 홍시, 두 손바닥 크기의 넓은 플라스틱 통에 채워 넣은 장조림, 볶음밥을 해 먹으면 맛있다는 총각김치까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늘 주변을 엄마답게 챙기는 모습에 '엄마'라고 별칭을 붙이기도 했었는데, 사는 집마저 가까워지니 정말로 서울에 제2의 엄마를 둔 기분입니다.


꼭 반찬 외에도 급히 필요해진 물건이 있으면 이 친구를 먼저 찾게 되는데요. 그 덕에 얼마 전 다녀온 일본여행에도 친구가 빌려 준 돼지코 충전기를 유용하게 잘 쓰고 돌아왔답니다. 가기 전날엔 그녀의 휴대용 저울로 캐리어의 무게도 쟀지요. 필요할 때면 일손을 부탁할 때도 있습니다. 대신 그 친구는 주기적으로 저희 집에 놀러 와 책을 몇 권 빌려갑니다. 일종의 놀이로서 손수 귀여운 대출증을 만들어 줬더니 그걸 코팅해 책갈피로 쓰고 있다더군요. 집에 갔더니 책을 빌려주면서 짧게 써 준 포스트잇이 옷장에 붙어 있어 뿌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 자원을 나눠 쓰고 또 좋은 것이 생기면 언제 가져다줄까 궁리하는 사이가 버스로 고작 40분 거리에 있으니 타지에 살아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문득 주위를 빙 둘러보면, 가끔 일상의 얼마나 많은 비중을 타인의 사랑과 호의로 지속하고 채워가고 있는지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의 출처를 쫓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은 물건이 꽤 많아 새삼 놀라곤 합니다. 그중 손꼽을 것은 단연코 핸드크림입니다.

저는 겨울이 생일인 덕분에 핸드크림이 떨어져 본 일이 없습니다. 제 돈 주고 핸드크림을 사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에요. 명색이 생일 선물인 만큼 나름 세련된 브랜드의 제품을 받기 마련인 데다, 향에 크게 호불호가 없어 어떤 향이든 기분 좋게 바르고 있습니다. 덕분에 질 좋은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몇 년째 부족함 없이 바꿔가며 바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선물로 받은 핸드크림이 여러 개 남아 있어, 앞으로 몇 년도 거뜬할 것 같습니다.


또한 비록 깨져서 지금은 아쉽게 떠나보내고 없지만, 불과 일본에 갔을 때까지도 애용하던 마리몬드 꽃모양 손거울 또한 친구에게서 받은 생일선물로 햇수로 6년 넘게 사용했습니다. 그 손거울을 사용하는 동안은 다른 손거울을 산 적이 없었죠. 그러고 보니 손거울뿐 아니라 화장할 때 사용하는 둥근 탁상 거울도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물건이네요. 이 거울 또한 2년 넘게 애용하고 있습니다.


밤이나 비 오는 날이면 무드를 즐기기 위해 켜는 캔들 워머도 사촌 언니의 선물로 벌써 책상 위에 가까이 두고 쓴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음악을 실감 나게 듣고 싶을 땐 5년 전 엄마가 사 준 JBL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요. 방에서 퀴퀴한 냄새가 날 땐 전 회사 팀장님께서 퇴사 선물로 주신 이솝의 룸 스프레이를 뿌립니다. 도서관에 가거나 장을 볼 땐 K 언니로부터 크리스마스에 깜짝 선물로 받은 에코백을 들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할 땐 S언니가 사 준 마우스를 쓰고, 입맛 없는 아침엔 외숙모가 만들어 주신 잼을 토스트에 발라 먹습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물건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나지 않겠지요.

저의 일상 반경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직접 채운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채워준 것이 많습니다. 그 물건을 아무리 몇 년째 사용하고 있어도, 사용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 사람의 마음이 떠올라 새롭게 감사해집니다.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누군가의 애정과 호의가 느껴지는 것은 근사하고 특별한 일입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얼마나 누군가의 일상을 영위하는 데 조금이라도 곁에서 도움이 되는 물건을 선물해 왔을까요. 이렇게 물건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거라면, 저도 더더욱 소중한 이들에게 그들의 일상 가까이 함께할 수 있는 물건을 건네고 싶어 집니다.


오늘은 엄마가 택배로 보내 준 된장찌개 밀키트를 해 먹어야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일상을 함께 영위해 주는 물건들, 그리고 마음들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오늘의 중심을 지키는 나다운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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