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으로 준비운동 합니다

안전하고 다정하게 일상으로 한 걸음씩

by 위시

일본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타이밍 좋게 코로나에 확진되어 일주일 동안 잠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밀린 일도 있고 슬슬 다시 기운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던 요 며칠, 오늘은 한 숨 돌리고 일본에서 사 온 찻잎을 꺼냈습니다. 좀처럼 바로 세워지지 않는 마음에 최후의 비책을 써 보려는 심정으로요. 일상으로 돌아오려는 보폭이 왜인지 마음 같지 않게 자꾸만 삐걱거리고 어긋날 때, 커피보다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찾게 됩니다. 차에는 마시는 순간보다도 마시기까지의 찰나를 보듬어 주는 몇 가지 풍요로운 감각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그 감각을 따라가는 여정만큼 소란스러운 마음을 달래는 데 좋은 방법은 없죠.


먼저 거름망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찻잎의 색이 우러나와 차의 빛깔이 점점 진하고 선명해지는 모습을 감상해 봅니다. 찻잎을 우리는 최적의 시간이 포장지에 친절히 표시되어 있지만, 일일이 그것을 따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제 두 눈으로 직접 색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이만하면 좋다는 느낌이 들 때 스스로 거름망을 뺍니다. 나의 직감을 따르는 것이지요. 그날 기분에 따라 더 옅게 마시고 싶을 때는 조금 더 서둘러서, 진하게 마시고 싶을 때는 책의 몇 줄을 더 읽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더 기다려 봅니다.


충분히 우러 졌다 싶으면 거름망을 빼고 둥근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듯 쥐어 봅니다. 전 이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두 손바닥 전체로 온기가 퍼지면서 마음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마치 따뜻하고 다정한 작은 세계를 감싼 듯 풍족한 마음이 차오르기도 하지요. 두 손안에 은은히 스며드는 기분 좋은 따스함을 한껏 느끼고 나면, 이제 천천히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댈 시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잠깐! 그냥 마시기 전에 또 한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훅 하고 은은하되 단호하게 코끝을 두드리는 차의 향을 '맡'보는 것입니다. 차의 맛은 어쩌면 혀가 아닌 코로 느끼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마시기 직전의 찰나에 돌연 깊은 향이 올라오곤 합니다. 잠시 뜸을 들이며 차에서 스몰스몰 올라오는 매혹적인 향을 음미해 봅니다. 그리고 그 향이 아직 코끝을 맴돌 때, 조심스레 첫 모금을 마셔 봅니다. 서둘러 마실 때보다 더 풍요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차를 마시는 동안 뒤숭숭했던 마음도 어느새 찻찌꺼기처럼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한 차례 더 우려 마시며 마음껏 시간을 끌어도 좋지요. 이렇듯 차는 마시기까지의 순간에 우리의 감각을 차례차례 두드리는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마음이 조급해 다이빙하듯 얼른 일상 속으로 뛰어 들어오려던 나를 부드럽게 멈춰 세우고, 천천히 준비운동부터 하라고 일러주는 듯해요.


이렇듯 일상에 리셋이 필요할 때, 오랜 기간 어디론가 떠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 마음이 어수선해 좀처럼 편안하지 않을 때... 몸과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많은 순간들에 하나의 의식처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서둘러 뛰어 들어오려는 우리에게 한 단계씩, 안전하고 다정하게 걸어 들어오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 줄 것이랍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오늘의 중심을 지키는 나다운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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