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이야기
숲에서든 들에서든 혹은 바닷가 어디쯤에서든 자연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 조금씩 귀가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시끄럽든 아니든 소리의 빈도보다는 이 소리는 무엇일까 하며 곰곰이 생각한다. 작은 새소리를 들으며 이 새는 어떤 새일까, 누구와 대화를 하는 걸까, 같은 종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새일까, 음높이를 보면 어린 새 같은데... 무서워서 어미새를 부르는 걸까, 와 같은 생각을 한다. 들에서 들리는 풀벌레들과 언덕 너머로 들리는 파도 부서지는 소리도 눈을 감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모든 것이 친근하게 다가와 추억 어디선가의 장면을 꺼내다 준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는 온갖 천재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서 있는 고목과도 같은 강인함을 느끼게 하고 파도가 부서진 후 바다로 돌아간 자리엔 모랫속 무언가의 가뿐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리품과 함께 사라진 전쟁터에 남아 피어오르는 한줄기 연기가 연상이 된다. 어려움을 참고 견딘 인고 후의 한숨과 같은 느낌이랄까.
자연이 원래부터 지니던 소리들은 이처럼 내 안의 여러 감정을 꺼내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원하는 감정을 얻기 위해 새로운 환경을 가진 자연을 상상한다. 그리고 떠난다. 그리고 내가 원하고 자연이 허락한 하나뿐인 소리들을 감상하고 느끼며 소중히 담아 알린다. 자연에서 난 사람들에게 자연이 알리기를 원하는 위로와 위안, 어루만짐이 간절한 이에게. 이렇게 그 가치를 알리는 나는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이너이다.
연희동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늘 실내에 있거나 밖으로 나가더라도 차량 이동이 대부분이고 혹여 잠시 걷더라도 해도 들지 않는 빌딩 숲을 바삐 걷다 보니 무언가 특별한 소리가 나를 끌지 않는 이상 가던 길을 묵묵히 가고야 만다. 그래서 난 굳이 사러가 앞길에 주차를 하고 동네 지도라도 그리고 싶은 이 처럼 골목골목을 멀리 돌아가며 이 길의 소리를 듣는다. 보이는 것만큼 소리의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길이다. 그래서 좋다. 여유를 부리며 눈을 감기도 하고 삼거리 골목과 사거리 골목의 차이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외길을 걷다가 좌우로 열린 길에 다다르면 귀로 들어도 좌우로 트인 환경이 느껴진다. 어느 집 앞뜰에서 소곤대는 새들의 대화에 잠시 주춤하기도 하고 날개 퍼덕이는 소리에 움찔하기도 한다. 엄마와 아이의 정겨운 대화 소리에 평화를 느끼기도 한다. 오르막을 오르며 멀리서 들려오는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낮게 깔린 대기의 소리에 내가 높은 곳에 있음을 알며 아래에선 느끼지 못한 열린 소리 풍경에 몸이 가벼워진다. 연희동 친구네로 가는 작은 행복이랄까.
바쁜 일상에서 나는 얼마나 힘을 빼는 시간을 갖고 있을까. 한의사가 그랬다. 당신이 감기에도 걸리지 않고 몸살도 나지 않는 이유는 온몸이 매일 잔뜩 긴장하며 힘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힘 빼는 요령을 알려준다. 리듬이 빠른 생활에선 그럴 여유도 없고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가 버린다. 몸은 긴장한다. 언젠가 꺼내어 쓰기 위해 보존해 두어야 할 힘을 미리 가져다 쓰는 셈 아닐까. 시간을 잊으면 시간은 내 것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일상에서라면 어둡게 하여 정보를 줄이고 자연에서라면 있는 그대로 그곳에서 오롯한 시간을 보내며 감각을 쉬게 하고 자연의 소리에 몸을 맡겨보는 것. 스위치를 넣은 듯 회복되지는 않더라도 소리 안으로 나를 지금도 밀어 넣어 본다. 이 글을 마친 후에. 막연한 불안을 진정시키는 나의 방법이다.
*.본 글은 제가 Gourmet Lebkuchen에서 발행하는 히데코레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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