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회복

암 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황톳길을 걸어야 하는데, 요 며칠 자꾸 비가 왔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나설 때를 놓치고, 걷겠다는 마음도 자꾸 미루어진다. 요즘 남편은 운동다운 운동을 할 수가 없다. 수술 후에 적당한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 그 적당함의 정도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마음이 쓰인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따라 약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비만 안 오면 집에 오세요. 우리 집 앞 황톳길이 얼마나 좋아요.”


집 앞에 길게 이어진 황톳길은 흙냄새가 은은하고, 발바닥을 자극하는 감촉이 참 좋다. 시멘트 길처럼 차갑지도, 미끄럽지도 않다. 땅의 기운을 그대로 품고 있어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남편에게 그 길을 걷게 하고 싶다. 꾸준히 걸으면 기운도 돌고, 잃었던 생기도 조금은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운동이라기보다, 흙 위를 천천히 걷는 일상 속의 회복이다. 남편이 그 길을 걸으며 바람도 마시고, 풀잎에 맺힌 이슬도 보며 잠시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남편이 왔다. 소고기를 사 들고 왔다. 그렇게 사 오지 말라 해도 여전히 소고기를 사 들고 온다. 그러면서 딸도 부르라고 한다.

“딸은 어제 출장 갔다 와서 피곤할 테니 우리만 먹어요.”

나는 슬며시 말리지만, 남편의 얼굴엔 벌써 딸 생각이 가득하다.

요즘 남편은 유난히 딸을 챙긴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어 딸 가까이로 이사 온 것이 그에게는 큰 위안이 된 듯하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딸의 안부를 매일 같이 묻는다.

“딸은 잘 있나, 요즘 일은 어때?”

그의 입에서 딸 이야기가 하루라도 빠지는 날이 없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늦은 나이에 얻은 쉼 속에서, 가족이 주는 온기가 얼마나 귀한지 우리도 이제야 깨닫는 중이다. 딸이 가까이 있어 챙겨주는 게 고맙고 든든하다. 하지만 남편은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서툴다. 자꾸 보고 싶다며 전화를 걸고, 불쑥 불러내곤 한다.

그렇게 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뭐 하세요?”

“아빠가 와서 전화하려던 참이야.”

“그럼 잘됐네요. 점심은 우리 같이 먹어요.”

순간 남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거봐, 같이 먹자니까!”

그렇게 우리는 또 딸과 손녀와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식탁 위에는 늘 그렇듯 남편이 사 온 소고기가 올라가고,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지글지글한 냄비소리 사이로 번져나갔다.

가족이 함께 있는 그 평범한 순간이, 어쩐지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했다.

“아빠, 이렇게 고기를 구워 먹으면 안 좋다네요.”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 괜찮다.”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된데요.”

딸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알았다. 다음부터는 구워서 먹지 말자.”


아내 말은 대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남편이, 이번엔 묘하게 순순했다. 그저 ‘그래’ 한마디에 마음이 고마워졌다. 사실 이런 말도 딸이니까 스스럼없이 건넬 수 있는 조언이다. 사랑이 깃든 잔소리랄까.

남편은 수술한 뒤로 어깨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예전보다 더 아픈 사람 행색이다. 담당 교수님도, 수술을 집도한 교수님조차 그 이유를 명확히 모르겠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요양병원에서 구입해 온 한방 파스도 별다른 효과가 없어, 결국 집에 있던 파스를 조심스레 붙여 주었다.

살갗에 손이 닿자, 남편이 잠깐 찡그렸다. 그 표정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게 더 낫겠지요?”

“응, 그래도 시원하다.”

그 한마디에 괜히 울컥했다.

별다를 것 없는 점심 식탁, 흔하디 흔한 파스 한 장이었지만, 그날따라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일상으로 돌아올 남편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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