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균 일행은 S 병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미 나균이 임부원장으로부터 명단을 확보했기에 S 병원에서 도마뱀 인간들을 색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었다. 병원으로의 이동은 눈에 띄지 않게 흰색 밴을 타고 가기로 했다. 밴을 타고 가는 중에 케이트는 말했다.
“미국 CIA 워싱턴 지부장인 라이언을 만나봤어요. 예전에 한 사건으로 인연이 닿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도 개인적으로 외계인들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었어요. 피난민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나 노약자가 없다는 점이 너무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해명도 석연치 않았고요. 그들의 우주선이 지구에 접근한 것이 전혀 관측되지 않은 점도 이상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첨단 과학기술 때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몇 개월 동안 전해준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에 외계인 한 명이 실험실에서 사고로 사망하면서 도마뱀 얼굴이 노출되었어요. 그러면서 대대적인 외계인 조사에 들어가나 했는데 오히려 이 사건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전에 묻혔어요. 윗선에서 누군가가 이 사건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와 라이언 둘 다 외계인들이 사실은 렙타일들이 변신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노인들과 아이들이 없던 이유도 설명이 되죠. 이제 곧 전쟁이 일어날 텐데 노약자를 끌어들일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지구로의 우주선 접근이 관측되지 않은 것도 사실 그들이 우주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라면 충분히 설명이 되죠.
그들이 뚜렷한 첨단 과학 기술을 전수해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그들이 가진 첨단 기술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들이 단지 최면과 환상으로 과학자들이 첨단 기술이 존재한다고 믿게 하고 그런 기술에 대한 환상을 보게 한 것뿐일 거라 추측했어요. 그런데 빈스가 전해준 오즈의 이야기로 이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마뱀 인간들은 세계의 대도시 상공에 거대한 원반이 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게 하고 자신들은 외계인인 척 행동했던 거죠. 도마뱀 인간들은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데,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으로 가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인류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뿐만 아니라 라이언은 외계인을 가장한 렙타일들이 워싱턴의 권력자들과 결탁을 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어요. 실험실에서 도마뱀 얼굴이 노출된 사건이 쉽게 묻힌 것은 권력자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죠. 라이언은 워싱턴의 권력자 중 상당수가 이미 도마뱀 인간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면 권력자들을 죽이고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조사를 적극적으로 벌이던 라이언은 내가 미국을 떠나오기 직전 뚜렷한 이유 없이 한직으로 경질됐어요. 나는 그가 살해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케이트는 모두의 아연한 표정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건 지금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일 겁니다. 전 세계에 퍼진 렙타일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어요. 경질되기 전에 라이언이 한국의 국정원장에게 연락해서 이런 사실을 경고했다고 하는데 한국도 진행 상황이 어디까지인 줄 모르겠어요. 지금은 일단 한국의 국정원으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마녀들은 도마뱀 인간들의 정체를 쉽게 간파하고 폭로시킬 수 있으니까 결국 우리들의 힘을 이용해서 렙타일들을 색출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선 최선이에요. 지금 코븐 미국 지부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각자가 아는 연줄을 최대한 동원해서 핵심 권력자들이 렙타일로 모두 바뀌기 전에 우리 마녀들을 필두로 하여 그들을 색출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제는 시간 싸움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럼 우리 당장 정부 청사로 쳐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균이 케이트를 보며 물었다.
옆에 있던 빈스가 대신 대꾸했다.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어떻게 할 거야. 방해하는 자는 모두 죽일 거야? 정부안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라이언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한국 국정원장에게 연락한 거고. 우리는 국정원장이 연락해오면 한국 정부안에서 외계인에 대한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고 보고 도마뱀 인간 색출 작업을 도와주면 되는 거야.”
“이미 국정원장도 도마뱀들에게 당했다면요?”
“그렇지 않기를 빌어야죠.”
케이트는 대답하고 난 뒤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는 듯했다.
밴은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빈스는 내리며 말한다.
“국정원장으로부터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병원을 수색해서 더 구체적인 정보를 찾아보자고."
직원으로 변해서 근무하고 있던 도마뱀 인간들은 나균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창밖으로 뛰어내려 달아나려 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크리처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밖에 브루노와 혜수가 대기 중이었다. 브루노는 무지막지한 완력으로 뛰어 내려오는 도마뱀 인간을 하나하나 때려 뉘었다. 혜수가 옆에서 정화의 에너지를 뿜어내어 도마뱀 인간들의 변신을 해제하였다.
혜수가 브루노에게 꾸짖듯이 말했다.
“정보를 캐내야 되는데 다 기절시켜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걱정 마, 깨우는 것도 팔 하나 비틀면 다 깨게 되어 있어. 깰 때까지 비틀면 돼.”
브루노의 농담은 다소 과격했지만 그는 자신의 유머감각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중에 수뇌 격인 듯한 렙타일은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사무실의 일하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던 렙타일은 케이트가 정화의 에너지를 뿜어내니 원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평소같이 근무하던 병원 동료들은 경악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항복했다. 나균과 빈스는 병원 직원들 모두에게 집단 최면을 걸어 사건을 잊게 했다.
그 렙타일은 자신의 이름을 아비가일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은 렙타일들의 지구 정복 계획에 반대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종족 중에서도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고 했고 자신도 그러한 세력의 일원이라고 했다. 그녀는 렙타일 모두가 인류의 적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세력도 인류 중에 협력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