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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l 15. 2022

잊혀진 자들의 전쟁-12. 챔피언 결정전

잠실 경기장은 사람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최초로 한국에서 UFC 세계 챔피언이 나오느냐는 초미의 관심사는 중계석에 늘어선 수많은 카메라들이 대변해 주었다. 관중석은 이미 표가 매진됐고 경기 시작 전부터 사람들의 함성은 실내 경기장 안을 뒤흔들었다.



“도전자, 1라운드의 사나이 나균!”



진행자의 소개에 나균은 씽긋 웃으며 관중들을 둘러보았다. 엄청난 관중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전자임에도 홈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은 나균의 인기도 한몫했거니와 챔피언인 브루노가 도전자 몇 명에게 경기 중에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혀 선수 생명을 끝내 버린 것도 원인이었다. 



그래서 챔피언에게 도전하려는 새로운 도전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압도적인 강함으로 ‘링 위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부르노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가 있다면 세계 어디든지 가겠다고 이미 공언해놓은 상태였다.



“현 챔피언, 링 위의 도살자 브루노!”



함성과 함께 약간의 야유도 관중석에 흘러나왔다. 브라질 출신인 브루노는 관중들을 둘러보며 그들을 비웃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균을 노려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었다.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도전자나 챔피언 둘 다 그라운드 기술보다는 타격 위주의 파이팅이 주특기라서 호쾌한 시합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공이 울리자 나균은 속으로 그래봐야 인간일 뿐이라며 여유를 띠고 거리를 좁혀 갔다. 순간 브루노는 오른 주먹을 날렸는데 예상치 못한 가공할 스피드였다. 미처 피하지 못한 나균은 안면을 강타당하며 다리가 휘청이고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볍게 브루노는 나균의 얼굴에 잽을 날리더니 그다음 펀치는 천천히 묵직하게 나균의 복부를 강타했다. 나균은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나균은 그대로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카운트가 8까지 갔을 때 나균은 겨우 일어섰다. 



‘이놈 인간이 아니야. 첫 번째 펀치는 자신의 원래 속도로 때려서 관중들의 눈엔 잘 보이지 않았을 거야. 그다음 이미 무너져 가는 나에게 일부러 관중들에게 충분히 보일 만큼 느린 속도로 잽과 펀치를 던지며 나를 녹다운 시킨 거지.’



그러나 나균이 처음 치명적인 펀치를 허용한 건 방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은 브루노의 초인적인 스피드의 공격도 막거나 피해 가며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브루노의 파워는 막강했다. 주먹이나 킥 하나하나가 바위가 날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동안 괴물들과의 실전을 통해 단련된 나균의 공격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나균의 펀치가 브루노의 안면을 강타한 순간 브루노는 링 바닥에 머리가 꽂히듯이 쓰러졌다. 다시 일어선 브루노가 분노에 차서 울부짖었다. 



갑자기 늑대의 울부짖음이 경기장 안을 울렸다. 나균을 비롯한 사람들은 놀라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했다. 브루노의 등이 굽어지고 온몸에 털이 자라며 얼굴은 앞으로 뾰족해지며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강력한 발톱을 나균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관중들은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기장 안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그러나 나균이 상대해야 할 적은 브루노만이 아니었다. 관중 사이에서 수십 명의 자객들이 날아올라 수리검을 나균에게 던졌다. 나균은 영점장에서 어느새 방패를 꺼내 수리검을 가까스로 막고 공격해오는 브루노를 향해 검을 꺼내 공격을 했다. 



브루노는 강철같은 손톱으로 나균의 검을 받아 냈다. 그리고 오히려 브루노는 맹공을 퍼부어 나균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날아오는 수리검과 브루노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한 나균은 숨이 막힐 듯했다. 그러나 나균이 재빠르게 브루노의 공격을 흘리며 몸을 돌려 크게 반원을 그리며 검을 긋자 브루노의 왼팔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자객들이 검을 지닌 채 링 위로 쇄도했다. 링으로 들어오기 위해 날아오르는 몇 명의 자객이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고꾸라진다. 

케이트가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타난 빈스도 장검을 휘두르며 자객들을 베어 나가고 있었다. 



변신한 브루노의 완력은 대단했다. 한 팔을 잃었지만 연속으로 내려치는 브루노의 주먹과 킥에 나균의 방패는 휴지 조각처럼 구겨지고 말았다. 방패로 막아낼 때마다 몸이 뒤로 밀려났으나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나균은 구겨진 방패를 버리고 이제 검으로 브루노의 강철 같은 발톱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는 순간 예의 두 마리 늑대가 나균의 미간에서 튀어나왔다. 한 마리는 브루노의 남은 오른팔을 물고 늘어졌고 또 한 마리는 브루노의 왼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강력한 그들의 이빨도 브루노의 팔다리를 쉽게 뜯어낼 순 없었다. 브루노의 신체는 그만큼 단단했다. 나균은 검으로 브루노의 심장을 겨누었다.



어느새 자객들을 모두 처치한 케이트와 빈스가 링 위로 올라왔다. 

 

빈스가 물었다.



“브루노 너는 워울프(Werewolf-늑대 인간)인가?”



“보다시피.”



“너는 어째서 나균을 죽이려고 했지? 그리고 이 자객들은 너와 한 패지?”



“내가 왜 대답해 줘야 하지?”



“더 이상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버티지 말고 얘기해. 그렇지 않으면 남은 한쪽 팔도 없어질 수 있어.”



“두 팔이 없으면 몹시 불편할 것 같군.”



잠시 머리를 굴리던 브루노는 이내 포기한 듯이 말했다.



“물어봐. 그리 감출 것도 없으니. 저들과 한패냐고? 그들이 인간들을 지상에서 몰아내고 지구를 우리 크리처(초자연적 존재)들에게 돌려준다고 했으니 딱히 저들과 적이 될 필요는 없지 않겠어? 나도 인간들의 편에 서야 할 이유가 딱히 없어. 굳이 생각해 본다면 내 아버지가 인간들을 해치고 다니다가 은 탄환을 맞고 돌아가셨지. 뭐,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자기 잘못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은 거야. 그리고 나에게 그리 자상한 아버지도 아니었거든. 

 

 난 그다지 인간을 미워하지는 않아. 다만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할 것이라는 데 내 운을 건 것뿐이야. 50만 광년을 넘어온 과학기술을 가진 외계인들이 더 승산이 있지 않겠어? 내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 같았지. 게다가 인간을 위해서 그다지 내 목숨을 걸고 싶진 않았거든. 요즘 인간들을 봐. 풍요 속에 살찐 굼뜬 돼지가 되어 가고 있어. 전사를 찾아보긴 힘들지. 나약한 지구인들에게 승산이 없어 보여. 그래서 외계인과 손잡기로 하고 오늘 타이틀전에서 나균을 죽여달라는 요청을 해왔을 때 승낙했지.”



“이봐 애송이, 사회생활을 잘하고 다녀야지. 외계인들에게 뭘 밉보여서 그들이 널 죽이려 드는 거야?” 브루노가 이죽거렸다.

 


“외계인이 지구를 정복하고 나면 너에게 별다른 이득이 있어?” 나균은 의아해서 물었다. 



“적어도 나는 원래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수 있지.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늑대가 되어 울부짖으며 달리고 싶은 본능이 들끓어 견디기 어려워. 하지만 인간들이 지배하는 이 도시에선 그러다 발각되면 아주 곤란해지지. 밤이라도 이 도시는 불빛으로 휘황찬란해지잖아. 거대한 늑대가 뛰어다니면 바로 알아보겠지.


 그렇다고 들판을 뛰어다니려고 도시를 떠나 시골까지 가는 건 너무 귀찮단 말이야. 그래도 나는 도시를 아주 좋아하거든. 아름다운 아가씨도 많고 술과 맛있는 음식도 많단 말이야.”



“인간이 멸종되면 도시도 없어진다는 건 생각 못 해봤냐, 이 바보 같은 늑대야?" 나균은 어이가 없어 한마디 했다.



“그렇긴 하군.”

 


케이트가 브루노를 보며 얘기했다.



“브루노, 네가 손잡고 있던 이들은 외계인이 아냐. 도마뱀 인간인 렙타일들이야.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종합하면 그들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며 외계인인 척해온 것뿐이야.”



“뭐? 그 옛날에 사라진 도마뱀 새끼들이라고? 나도 전설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놈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감히 나를 속인 건가?”



브루노의 얼굴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빈스가 브루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네가 우리 편에 서서 그들과 싸운다고 맹세한다면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해 주지. 잘 생각해 봐. 인간들이 멸종되고 나면 보름달이 뜬 밤에 넌 늑대가 되어 마음껏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도시 생활에서 네가 누리던 재미는 모두 사라지게 돼. 보름달이 뜬 밤이 지나고 나면 황량한 들판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나를 속이며 바보 취급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도마뱀 새끼들을 가만둘 수 없어. 너희 편이 될 테니 말해 봐. 어떻게 외계인들이 도마뱀일 수 있는지. 하늘 위에 떠 있던 거대한 원반은 뭐고 어떻게 원반에서 그들이 내려왔는지.”



“너도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도마뱀 인간들은 강력한 최면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간들의 마음을 조종하여 환상을 보게끔 할 수 있지.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원반은 환상이었어. 위대하신 오즈는 환상을 바로 꿰뚫어 보셨어. 그러나 그런 거대한 환상을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보게 하는 건 쉽지 않아. 많은 수의 도마뱀 인간들이 동원되어서 동시에 힘을 집중해야 하고, 또 그 힘을 증폭시키는 거대한 마력을 가진 누군가가 있어야 할 거야. 이 사건의 배경에는 렙타일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도 있다는 얘기지.”



“그러면 그들은 환상과 최면술을 통해서 자신들을 외계인으로 믿게 만든 거야?”



브루노는 기가 찬 듯 물었다.


“왜 굳이 자신들을 외계인으로 믿게 만든 걸까?”



어느새 혜수가 링 위로 올라오며 물었다. TV로 나균의 챔피언 결정전 중계방송을 보고 있다가 습격 사건이 방송 카메라에 잡힌 것을 보고 이리로 급히 날아온 것이다. 카메라맨들은 이미 도망가고 난 후이나 카메라는 여전히 충실히 돌아가고 있었다. 혜수는 몸의 에너지가 거의 회복된 듯 보였다.



“그 이유는 S 병원에 있는 도마뱀 무리를 잡아서 실토하게 해야지.”



빈스가 덧붙였다.



케이트는 브루노의 떨어진 팔을 주워 와서 이야기했다.



“브루노, 넌 이제 우리 편이니까 팔을 붙여 줄게. 배신하지 마.”



“내가 머리는 좀 나빠도 이제 누가 적인지는 확실히 알겠어. 사기꾼들은 대가를 치러야지. 그들이 도마뱀 인간인 줄 알았다면 편을 들지 않았을 거야.”



브루노의 떨어진 왼팔을 절개된 부위에 다시 붙이고 케이트는 정신을 집중했다. 잘린 부위가 밝게 빛나더니 약간의 흉터만 남기고 팔은 다시 감쪽같이 들러붙어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 빚은 내가 꼭 갚지.”



브루노는 케이트를 향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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