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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Jul 08. 2022

잊혀진 자들의 전쟁-11. 임부원장과 지훈


그날 밤 나균과 혜수는 어둠을 틈타 S 병원에 잠입했다. S 병원 안에는 들어왔지만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균이 최면을 걸 수 있으니 병원의 직원을 하나를 붙잡기로 했다.




나균은 지나가던 간호사 중 한 명을 붙잡아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최근 병원의 관계자 중에 특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또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지 물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주치의로 유명한 임재성 부원장이 의심스럽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 뒤로 2명의 간호사를 붙잡고 최면을 걸어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요즘 들어 부원장이 평소와 달리 심야에 시체 보관실에서 나오는 것이 직원들에게 꽤 여러 번 목격되었고 무언가를 운반하는 등 상당히 이상하게 행동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냄새가 난다. 나균과 혜수는 임 부원장에 대해서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균은 즉시 부원장의 주소를 간호사들로부터 알아내어 혜수의 빗자루를 함께 타고 날아갔다. 임재성 부원장의 집은 한남동에 위치해 있었다. 대대로 명문 의사 집안에 부유한 아내를 만나서 그런지 집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근사한 저택이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 나균과 혜수는 잠시 집을 살펴보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무렵이라 저택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집 주차장으로부터 검은색 세단이 미끄러져 나왔다. 어두운 밤이라도 나균은 차 안의 인물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임재성 부원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흡혈귀가 된 이래 어둠 속에서도 나균은 멀리 있는 사물도 뚜렷이 식별할 수 있었다. 나균은 혜수와 함께 반투명 빗자루를 타고 밤하늘을 날며 임부원장의 세단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세단은 15분 정도 달려 한 단독 주택의 주차장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그러나 10여 분이 지나도 집의 불이 켜질 기미가 없었다. 나균과 혜수는 마당에 소리 없이 착륙한 후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나균은 강한 악력으로 손잡이째 조용히 비틀어 뜯어버렸다.




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으나 나균은 모든 걸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거실 안은 별다른 가구나 장식물이 없었다.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을 발견했다. 문을 열고 내려가니 환한 조명 아래 임부원장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옆에 가운을 입은 의사가 한 명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임부원장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의사는 나균 일행을 보자마자 나균에게 날카롭고 긴 손톱을 날리며 공격해왔다. 나균은 펀치와 킥으로 이 자를 간단히 제압했는데 쓰러진 의사의 얼굴은 어느새 도마뱀으로 변해 있었다.




“누구십니까?” 두려움에 떨며 임부원장이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원장님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요.”



그 순간 나균의 의식이 임부원장의 동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임 부원장은 적어도 인간인 듯했다. 그리고 그의 주체 못 할 정도의 슬픔과 죄의식이 먼저 밀려들었다. 그리고 간절함이 다시 느껴졌다. 임 부원장의 마음속에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암시를 남기고 나균의 의식은 빠져나왔다. 




그리고 부원장 앞의 수술대에 젊은 청년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청년은 몸의 한쪽 팔과 양다리, 그리고 몸통의 여기저기가 봉합된 체 마치 누더기를 기워 놓은 것 같은 나체의 몸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순진하고 해맑은 청년의 얼굴이었다.



 

임부원장의 마음속에 암시를 심어놓는데 성공한 나균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몇 명 정도의 도마뱀 인간이 있는지 아십니까?”




“도마뱀 인간이라뇨? 도마뱀 인간은 모르겠고 외계인이 수십 명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병원의 직원으로 위장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외계인인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제가 정부청사에서 만난 외계인의 부탁을 받고 외계인들을 직원으로 위장 취업시켜 주었습니다.”




“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죠?”




“그들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해왔습니다.”




임부장은 그동안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의사로 과분할 정도로 인정받았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했습니다.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보람도 있었죠. 하지만 아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래로 그 모든 것은 저에게서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아들 지훈이가 삶의 희망이 되어주었고 삶의 유일한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전도유망한 축구 선수였던 지훈이는 교통사고로 왼팔과 양다리를 잃고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제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병실에서 회복의 기약 없이 누워 있는 지훈이를 보는 일은 저를 깊은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더군다나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려던 녀석이 양다리가 사고로 절단되어서 혹시라도 깨어났을 때 받을 충격은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의식만이라도 돌아오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국무총리님을 진찰 차 뵈러 갔는데 자문을 맡고 있는 한 외계인이 저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면 아들을 살릴 방법이 있다고 했고 아들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최첨단 과학기술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소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내 눈으로 직접 지훈이가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과학 기술로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라며 명함을 주고 사라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외계인의 과학기술로 지훈이를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하루하루 커져갔습니다. 결국 저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지훈이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택을 하나 구입하라고 요청해서 이 집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사라진 지훈이의 팔다리와 신체 일부를 대체할 부분들을 시체보관소에서 어떻게든 구해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원미상인 사체 중 필요한 부분을 비밀리에 구해왔습니다. 



그는 지금 보시는 것처럼 지훈이의 몸을 제가 구해온 사체의 팔다리와 신체 일부에 연결하여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외계인들이 낯설게 생긴 수많은 첨단 장비로 이 방을 꾸며놨었는데 지금 이 외계인이 죽자 그 모든 장비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군요. 



저 외계인이 저런 도마뱀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늘이 외계인이 지훈이를 완전히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는데 저자가 죽었으니 이제 그 희망도 완전히 사라졌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외계인이 부원장님을 오늘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식물인간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워요. 외계인들이 설치했다던 첨단 장비도 부원장님에게 최면을 걸어 환상을 보게 한 것 같아요. 외계인이 죽자 첨단 장비가 모두 사라진 걸 보면 알 수 있죠.” 혜수가 원장에게 말했다.



“말씀대로입니다.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싶었습니다.”



“그 외계인이 부탁한 건 병원 직원으로 위장 취업 시켜달라는 것이 다였나요?”



혜수가 물었다.



“저는 대통령 주치의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진찰 차 청와대를 방문할 때 자기 사람을 간호사로 한 명 데려가 달라더군요. 그래서 저번 진찰 때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가는 동안 모든 보안 절차나 상황을 세세히 살피는 듯한 인상은 받았습니다.”




“그 간호사 역할을 한 외계인은 아직 병원에 있습니까?”




“그때 이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외계인들은 혹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우리 병원에는 정재계의 인사들이 진찰을 받으러 많이 옵니다. 특히 정계의 고위층이나 재계의 인사들이 병원을 방문할 때 그 일정을 알려 달라고 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고위 인사들을 진찰할 때도 외계인들은 불쑥 진찰실을 들어왔다가 나가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들이 들어왔다 나간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위 인사들은 아예 그들이 진찰실에 들어온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대충 뭔가가 병원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건 알겠는데 더 자세한 건 병원에서 아직 근무하는 다른 외계인을 붙잡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나균은 이제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이때 혜수는 부원장을 보며 말을 했다. 



“제가 아드님이 회복되도록 능력을 한 번 써보겠습니다. 원래 의식이 없는 자를 소생시키는 마술은 그리 성공 확률이 높지 않지만 우리 종족 중엔 죽은 자를 되살린 마녀도 있다고 하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



혜수는 부원장의 절절한 사연에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지훈의 아랫배 부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혜수는 집중했다. 혜수의 온몸이 밝게 빛나더니 순식간에 그 빛이 혜수의 오른손에 모이고 지훈의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지훈의 온몸이 전기가 통하는 듯 심하게 들썩이다 잠잠해졌다. 그리고 희미한 푸른빛이 지훈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지훈은 눈을 떴다. 




“아버지..”




지훈은 임부원장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임부원장은 기쁨에 몸을 떨며 눈물을 쏟았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혜수는 에너지를 너무 소진한 듯 몸을 휘청이며 쓰러지는 것을 나균이 간신히 붙잡았다. 나균은 혜수의 몸을 부축하며 자랑스럽게 혜수를 바라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워 보여도 마음이 따뜻한 아이구나.’




임부원장과 아들을 내버려 두고 그냥 떠나도 상관없었을 텐데 혜수는 굳이 온몸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그들을 도왔다.




“혹시 외계인들이 부원장님께 오늘 사건에 대해 물으면 습격을 당했다고만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계시고요. 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 같으면 이게 제 전화번호이니 연락 주세요. 당장 달려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외계인 명단을 주시면 언제라도 저희가 병원에 가서 싹 쓸어버릴 테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나균은 부원장을 안심시켰다.




나균과 혜수는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는 임부원장과 지훈을 뒤로한 채 조용히 그 집을 떠나고 있었다. 



혜수는 힘겹게 말했다.




“이 정도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회복에 5~6일은 걸릴 것 같아. 그 사이 케이트 언니와 빈스도 돌아올 테니 같이 의논해서 병원을 수색하는 게 좋을 거야.”




“잘 됐네. 나도 3일 뒤에 잠실 경기장에서 페더급 UFC 세계 챔피언 결정전이 있어. 거기는 꼭 참가해야 돼. 나도 돈을 좀 벌어야지.”




혜수는 어이가 없어서 나균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균은 자신이 생활력 강한 남자라는 것을 어필한 것이 자못 뿌듯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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