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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는 마음 Aug 23. 2022

잊혀진 자들의 전쟁-17. 동맹

회의실에 도착하니 국무총리를 위시하여 각부의 장관들이 앉아 있었다. 혜수와 케이트가 정화의 에너지를 뿜어내자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들 몇 명의 얼굴이 도마뱀으로 변했다. 나머지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허둥대었으나 오히려 대부분의 렙타일들은 각오한 듯 태연하게 동요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장관 역할의 렙타일들 중 몇몇은 적개심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서 공격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즉시 브루노가 그중 한 명의 머리를 테이블 위에 놓고 짓누르며 목을 조르자 렙타일의 눈이 돌아갔다. 나머지는 곧바로 전의를 상실했다.



정 국정원장은 약간 놀랐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나균 일행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한강대교의 전투에서 이미 방송으로 확인했기에 회의실 안 렙타일들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정 국정원장은 회의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특수요원들을 호출하여 정체가 드러난 렙타일들을 체포해 데려가게 했다. 정 국정원장은 말했다. 



“곧 대통령님과 비서실장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잠시 후에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오는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도마뱀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놀라지 마십시오. 혜수 씨와 케이트 씨 앞에서 위장을 하고 있어 봐야 곧 탄로가 날 테니 스스로 위장을 벗은 것입니다. 이 방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사람들이 놀랄까 봐 위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요. 일단 자리에 앉아주시겠습니까?”



나균 일행은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렙타일이라는 충격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어떻게 됐지? 너희들이 죽인 건가?” 빈스가 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사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지만 여기 한국에서는 그동안 대체된 한국인 모두 죽이지 않고 생포하여 저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모두를 마취시켜 가수면 상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통령 역할을 하던 렙타일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버록이라고 합니다. 일단 저희는 당신들과 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요. 저와 한국 공격에 동원된 동포 중 많은 수가 케세론 왕과 생각이 다릅니다. 대사제의 말을 믿을 수 없어요. 불필요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케세론 왕도 대사제도 정신 상태가 평소와 같지 않다고 생각해요. 왕이나 대사제의 정신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를 공격하는 엄청난 일을 어머니 가이아의 신탁을 받았다고 해도 대신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감행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우리 렙타일들이 지상을 버리고 지하 왕국을 건설한 것은 인간들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우리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입니다. 이제 와서 신탁 하나로 멸종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게 타당한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지하 왕국을 수백 년간 발전시켜 온 저희로서는 굳이 지상을 점령하는 것이 큰 이득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한 인류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많은 동포가 죽어갈지를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싸우고 있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당신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 같은 크리처들은 오랜 세월 인간에 의해 핍박받고 탄압받아왔습니다. 굳이 당신들이 인간들을 위해 피를 흘릴 필요가 있나요? 또한 크리처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우리 종족의 회유에 넘어왔습니다. 당신들이 굳이 렙타일과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렙타일들도 당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크리처들은 소수라서 렙타일은 당신들의 자치 구역을 만들어줄 수도 있고 우리 왕국에 받아들여줄 수도 있습니다. 지구는 크리처와 렙타일이 공존하기에 충분히 넓어요. 왜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겁니까?”



빈스가 먼저 대답했다.



“나는 인간들이 만들어 논 이 세계를 사랑하오. 나는 록큰롤을 사랑하지. 인간들이 창조해 온 예술과 여자들을 사랑하오. 인간의 세상에서 사는 것은 재미가 있지. 나처럼 오래 살아야 하는 뱀파이어에겐 지루함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법이지. 렙타일이 지배하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지루하고 끔찍해요. 거기다 자아도취에 빠진 다른 크리처들과 자치구역을 만들어 산다는 건 더 끔찍하지. 매일 서로 싸우다 서로의 목숨을 빼앗고 말 거요.”



“나도 마찬가지야. 렙타일이 세운 지하 왕국을 가보진 않았지만 여태껏 만나본 도마뱀 인간들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세계일지 안 봐도 뻔해.”



브루노가 거들었다.



버록은 다시 반박했다.



“인류의 어리석음을 보세요. 인간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는 대량생산 경쟁을 벌이며 자기들을 태어나게 한 어머니 지구 가이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수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대다수 사이에 유사 이래 지속되고 있는 갈등과 투쟁을 보세요. 

위정자와 권력자들은 자신도 믿지 않는 그럴듯한 신념을 포장하여 대중들을 선동하고 자기 뱃속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거창한 구호의 이데올로기로 자신을 포장하고, 어리석은 민중도 현혹하고 있습니다. 민중은 그들의 선동에 속아 서로를 증오하고 있고요. 미혹되고 선동된 민중 위에 군림한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심지어 전쟁도 일으키죠. 

지구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핵무기를 이런 인간들이 가지고 있으니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이아 님은 이러한 위기를 좌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혜수는 대답했다.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어리석음에서는 예외는 아니죠. 하지만 인간은 성장하려는 열망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두려움과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상대를 희생해도 된다는 어리석음이 우리가 길을 잃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아주 조금씩이나마 그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인간은 물건이나 동물처럼 취급했던 중세나 고대에 비하면 현대는 어떻게든 크게 발전한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이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지만 저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인류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인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저도 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버록은 말했다.



“여러분에게 들어야 할 말을 충분히 들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말씀에서 인류의 세상을 지켜야 할 이유도 충분히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희의 힘을 합치고 여기에 인간들의 협력까지 얻어낸다면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태껏 숨죽이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승산이 있기 전에 섣불리 움직여서 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희도 맞서 싸울 기회가 온 것 같군요.”



“당신들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당신들이 당신들의 목숨을 걸며 케세론 왕과 대사제에 맞서 싸우리라고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케이트가 버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는 저희 동포들의 피를 헛되이 흘리고 싶지 않습니다. 동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우리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분과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동맹을 맺으면 비밀리에 활동했던 저희를 이제 위험에 노출시키게 됩니다. 저희도 여러분 편에 서서 목숨을 걸겠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여러분의 각오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려는 인류와 저희가 지키려는 동포의 생존과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여 이 전쟁은 멈춰야 합니다. 케세론 왕과 대사제가 원하듯 인류를 지상에서 절멸시키는 전쟁은 인류의 피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의 피도 흘리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피를 흘려 인류와 우리 동포를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피를 흘리겠습니다.”



버록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장관 역할을 맡은 여기 렙타일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입니다. 한국 공격에 동원된 렙타일들 중 간부들은 저희 왕국의 반하드 가문 사람들이 많습니다. 케세론 왕을 반대하는 저희 세력은 반하드 가문이 주축이 되어 있습니다. 저도 반하드 가문 사람이고요. 아까 체포되었던 국무총리와 장관들 대다수가 저희 세력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등장했을 때도 놀라지 않았던 거죠. 

물론 케세론 왕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렙타일이 아직 훨씬 더 많습니다. 장관들 중 일부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영입하지 않은 자들은 영문을 몰라서 반항했던 것입니다. 실험실 사고로 렙타일의 얼굴이 노출되었을 때 사건을 묻은 이유는 반대 세력인 우리의 존재를 노출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정원장을 통해 라이언의 보고를 받았고 여러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외계인 체포 명령을 내린 거죠. 지금은 사람들이 렙타일들을 외계인으로 알고 있으니 외계인들을 체포하는 것으로 진행하면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실보다는 안정이 중요하죠. 그뿐만 아니라 S 병원을 통해 정재계 인사들로 변신한 렙타일들도 비밀리에 모두 신속히 체포할 겁니다. 

그리고 거기 서 있는 아비가일도 저의 조직원 중 하나입니다. 여기로 이동 중 그녀는 여러분들이 믿을만한 동맹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렙타일 중 저희들과 뜻이 다른 렙타일들이 여전히 꽤 있습니다. 이들은 당분간 감금해둘 것입니다. 그리고 왕국에 남아있는 저희 가문 사람들이나 동지들의 친인척들이 숙청되거나 인질로 잡히기 전에 즉시 대피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전 세계의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 우리의 동지를 규합하여 뭉쳐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층에 잠입한 적대적인 렙타일들을 색출해야 합니다. 현재 인류를 어떻게 공격할지는 아직 구체적인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어요. 케세론 왕과 대사제만이 전체적인 전략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여태까지 왕국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단계적으로 수행하기만 했습니다. 그들의 전략을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죠. 이에 대한 조사는 세계의 최강대국 미국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 케세론 왕의 최측근들이 많이 잠입해 있습니다.” 



“혹시 핵 공격을 우려하시는 겁니까?” 케이트가 물었다.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인류를 숙청하는 임무를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부여받은 케세론 왕과 대사제가 핵무기를 사용하여 지구를 오염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공격을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미국 정부가 어디까지 렙타일에 장악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적과 결탁하지 않은 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협력하여 어떤 식으로 케세론 왕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조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국방부 청사 밖에서 사자후가 들렸다. 놀랍게도 목소리는 벽을 뚫고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빈스! 밖으로 나와라. 승부를 내자.”



“이 목소리는 제이슨이군.”



빈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문신에서 검을 뽑으며 국방부 청사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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