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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일 Mar 07. 2023

클래식이 아닌 이재후를 듣는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위로는 겸손하며, 마음은 따뜻하다.

시동을 켜니 FM에서 귀에 익은 바이올린협주곡이 흐른다. 누구 곡인지는 모르겠다. 곡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귀를 쫑긋 기울인다. 이재후 아나운서가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 3악장이라고 한다.   

   

클래식 곡명을 아는 것은 참 어렵다. 한때 1 주제, 2 주제 익히면서 외우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이내 포기했다. 슈만인가 해서 들으면 브람스이고, 비발디인가 하면 하이든이다. 1악장은 어찌어찌 안다고 치더라도 2악장, 3악장 넘어가면 구분이 더 어렵다.      


하기야 고3 담임 때도 졸업 후 6개월이면 이름을 거의 잊는다. 그런 내가 클래식 곡 이름을 안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좋아하는 곡을 찾아서 듣기보다 FM에서 흐르는 음악을 듣다 보니 더 그렇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편하게 듣는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나의 아침과 출근 시간을 함께하는 <출발 FM과 함께>는 이재후 아나운서가 운영한다. 처음에는 클래식을 들었는데, 요즘은 이재후의 목소리 때문에 듣는다. 오늘은 주엽이라는 세 살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엄마의 사연이다.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던 아이의 치료를 시작한지 25개월 만에 저희 아들에게 기적같은 즐거움이 찾아왔어요.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우리 주엽이에게 드디어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온 지 3년, 정말 매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쪼꼬미 아들 박주엽의 생일을 축하해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이재후는 마치 바로 옆에 주엽이가 있는 듯이 칭찬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주엽이 이 녀석, 정말 잘했어.

앞으로 자전거도 타고, 엄마랑 산책도 하고, 달리기도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재후 아나운서의 응원은 진심이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엽이와 엄마를 응원한다. 이어서 라벨의 피아노곡이 흐르고, 다른 사연을 소개한다.     


이재후 아나운서님, 어젯밤 아나운서님 꿈꿨어요. 같이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오늘 복권 살까요?

     

복권은 절대 사지 마세요. 돈 버리는 겁니다.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꼼짝 말고 집에 계세요. 절대 계약서 같은 것 쓰면 안 됩니다. 제 꿈꾼 죄로 오늘은 이불 속에서 가만히 계세요.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재후 아나운서는 올림픽을 도맡아 진행한 스포츠 전문 캐스터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 폐막식을 마치고 한 마지막 멘트는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기억된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그의 위로는 겸손하며, 

그의 마음은 따뜻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클래식이 아니라, 

이재후를 듣기 위해 FM을 듣는다. 

    

그를 통해 내가 위로받고,

누군가를 함께 응원하고,

때로는 웃는다.   

   

벌써 도착이다. 

앉아서 조금만 더 들을까,

그냥 내릴까를 매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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