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여성, 트라우마
■ 4·3, 여성, 트라우마
한 해골이 /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 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 「해부극장」 전문 주1)
제주에도 역사가 있다. 제주는 원래 탐라(耽羅)라 불렸는데 ‘섬나라’ 또는 ‘섬 왕국’이라는 뜻이다. ‘탐라’는 고려 고종 10년(1223년) ‘제주’로 바뀐다. 전라도에 속한 제주에는 목을 다스리는 정3품 목사(牧使)가 부임했다. 제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슬픔과 해원(解冤)의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부흥을 꾀하던 이들, 망국과 조선 건국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려 사람들, 반역을 꿈꾸었거나 권력에서 밀려나 유배 온 죄인이 모인 변방이다. 또한 수탈의 땅이다. 말, 전복, 귤은 도민들이 조정에 진상한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제주의 목민관들은 봄에 꽃이 피면 그 꽃의 개수대로 귤을 바치라고 명했다. 집에 귤꽃이라도 피면 귤나무에 끓는 물을 붓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제주는 저항의 섬이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저항한 삼별초, 왜구와의 싸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까지. 제주의 몸에는 저항의 피가 흐른다.
제주 4·3은 난데없이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이 필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사실이란 마대와 같아서 그 안에 무엇인가를 넣을 때까지는 서 있지 못한다.주2)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고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하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우리는 앞으로 달리면서도 뒤돌아보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강정심의 트라우마에 주목해야 한다. 반죽음 상태인 여동생 정옥을 발견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동생의 입 속으로 흘려보낼 때 동생이 그 손가락을 아기처럼 빨았던 기억. 그 외상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 대만, 오키나와 등에서 제주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작별, 57쪽)의 집단적 외상으로 팽창한다.
▶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 초등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초등학교 운동장을 헤매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중략)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작별, 84쪽)
외상(trauma)이란 ‘과도한 위험과 공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심각한 심리적 충격’이다. ‘심각한 죽음이나 상해를 입을 위험을 실제로 겪었거나 그러한 위협에 직면했을 때, 혹은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하였을 때, 이에 대하여 강렬한 두려움, 무력감, 공포를 경험한 경우’주3) 에 나타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주요 증상은 위험에 대한 과도한 반응인 과각성(hyperarousal), 외상을 재경험하는 침투(intrusion), 광범위한 회피 증상으로서 억제(constriction)다.주4) 침투의 대표적 증상이 반복되는 꿈이다. 강정심은 전기장판이 깔린 요 아래 실톱을 깔고 잤다. 그래도 자주 악몽을 꾸었다.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姜正心)은 상징적 인물이다. 4·3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고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산증인이다. 변방의 땅을 일구고 바다 속을 누빈 제주 여성이다. 강정심은 깊은 상처가 아물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오빠 강정훈의 생사확인을 위해 제주 바다를 건넜다. 1960년대 초반부터 바다를 건너 대구형무소, 진주형무소, 부산, 여수,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희생자 및 실종자 유족회 활동을 하며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삼십사 년 동안 모은 자료가 없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다시 자료를 모았다. 트라우마를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正心)이다. 말년에 치매로 대부분의 기억을 잃고, 끝내 외상을 극복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그보다 더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선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의 인터뷰, 1940년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할머니의 치매에 걸린 일상을 단편 영화로 만든다. 사실성이 돋보였던 전작과 달리 3부작의 마지막 단편에서 인선은 자신을 인터뷰했다. 제주 4·3의 흑백 영상이 흐르는, 말보다는 침묵이 가득한, ‘그늘진 회벽과 빛의 얼룩들이 러닝타임 내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 그 영화’를 끝으로 인선은 갑작스레 목공을 배우고 목수가 되었다. 왜 인선은 3부작을 이은 장편을 완성하지 못했을까. 앞선 두 편은 인선과 거리가 있는 사건이었다. 수십 년이 흘러 어느 정도 진실과 실체가 밝혀지고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진 사건임에 반해 제주 4·3은 강정심과 인선과 도민들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개인적, 집단적 트라우마다. 인선의 집에서 경하가 본 꿈과 환영은 인선이 완성하고자 한 영화의 이미지와 묘하게 일치한다.
내가 인선이라면 그 영화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추가했을 것이다. 1916년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조르주 피코는 비밀리에 만나 전후 중동을 자신들의 영토로 분할하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는다. 또한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세우는 시오니즘 운동을 지원하겠다며 미국의 유대인을 설득했다(밸푸어 선언). 아랍과 유대인 양쪽에 국가 수립을 약속한 것이다. 제주 4·3처럼 1948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라 밖으로 쫓겨났고 제 땅을 잃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성인 키 몇 배의 높은 장벽 앞에서 엄마는 아들을 찾고 아들은 어머니를 부르는 장면, 언덕 위에서 서방의 관광객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폭격을 가하는 순간을 비스듬히 누워 불꽃놀이처럼 지켜보는 광경을 교차편집으로 대비하겠다.
금기가 풀리면서 이제 제주 사람들은 4·3으로 핍박받지 않는다. 희생자 가족과 제주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 제주 4·3의 진실을 발굴하고, 그 사실을 영상과 문학 작품 같은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기억해야 한다. 애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누운 백비(白碑)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고 씌어 있다. 4·3이 잊힐 수 있을 때까지 잊지 않아야 한다. 달 뒷면처럼 제주 곳곳에 웅크린 사연을 우리가 기억하고 애도하는, 다정다감한 그 일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는다’.
주1)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44-45쪽
주2)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 2015, 21쪽
주3) 주디스 루이스 허먼, 《트라우마》, 열린책들, 2022, 10쪽, 각주『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 재인용.
주4) 주디스 허먼, 위의 책,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