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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민 Jan 01. 2024

이인삼각으로 벽 통과하기 1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하도시와 벽이후 페이지만 표시)을 다 읽고 나니 백석의 시가 생각났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현실 세계에서 열일곱 살 소년인 는 열여섯 살 소녀인 가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는다. “네가 도시의 큰 틀을 말해주면 내가 그에 대해 실제적인 질문을 하고 네가 대답해서 보충하는 식”(21)이다둘의 이야기로 만든 비밀 도시에서 는 와 재회하지만 는 를 기억하지 못한다도시의 와 가 진짜라면 실제 세계의 와 는 본체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는 꿈 읽는 이로서 의 도움을 받아 서고에 보관된 오래된 꿈을 읽어나간다. “나 말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그러므로 도서관은 언제나 나와 너만의 것이다.”(74     


  나는 이 소설의 ’ 같은 그녀를 생각한다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지만 학교가 엇갈리면서 그녀와 멀어졌다전해오는 소식으로 그녀가 국립 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몇 가지 말했다구글링에 능숙한 한 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대형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그때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서점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서점 직원은 그녀의 동의 없이 함부로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으므로 그녀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겠다고 말했다결국 그녀와 연락이 닿지 못했다거기까지가 그녀와의 인연인가보다 생각했다.도시와 벽에도 와 ’, ‘와 카페 여주인의 로맨스가 등장한다사랑과 그리움의 정서가 공기처럼 퍼져 있고 중력같이 작용한다그렇다고 이 작품이 통속적인 연애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도시 주변에는 백석의 시에 등장할 것 같은 짐승들이 산다. “날카로운 외뿔이 달린 과묵한 황금색 짐승들은 아침이면 정연히 줄지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밤이 되면 벽 바깥의 서식지에서 몸을 맞대고 잠든다.” (130도시 안팎으로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뿔피리를 불면 짐승들은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저녁에는 바깥으로 돌아간다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짐승의 사체 위에 한없이 쌓이는 눈유채기름을 뿌리고 사체를 태우는 연기가 잔상으로 남았다. “겨울밤이 밝으면 그들 중 몇 마리가 서식지 바닥에 하얀 눈옷을 덮어쓰고 드러누워 있었다누군가의 죄를 떠안고 대신 죽어간 이들처럼.”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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