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4
다시 “그 높고 견고한 도시의 벽”으로 돌아가자.
하루키는 2009년 1월 이스라엘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처럼 그해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루키는 시상식장에서 「벽과 계란」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조주희,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북스타, 2021) 189-191쪽에서 발췌)
“만약 여기에 단단하고 커다란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있다고 하면, 저는 언제나 계란 쪽에 서겠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많든 적든 각각 하나의 계란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혼과 그것을 둘러싼 약한 껍질을 가진 계란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많든 적든 각자에게 있어 단단하고 커다란 벽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벽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스템’이라고 불립니다.”
‘벽’이라는 공고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해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 이가 필요하며, 그 사실을 이야기로서 전달하는 존재가 소설가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하루키는『도시와 벽』을 쓴 것이 아닐까.
나는 백석의 시 중에「흰 바람벽이 있어」를 가장 좋아한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중략)/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후략)
흰 바람벽이라는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나와 내 그림자와 도서관이 나오는 영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지난날의 기억이 엔딩 크레딧처럼 올라가는 극장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고독한 인간. 가끔은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극장을 나온 나는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 누군가 나직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습니다. 높은 벽도 당신 마음의 날갯짓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중략)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754쪽)
이인삼각으로 결승선에 도착한 나는 너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