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민 Jan 03. 2024

이인삼각으로 벽 통과하기 3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3

  ‘벽’과 더불어 내게 흥미로운 소재는 ‘그림자’와 ‘도서관’이었다. 


  그림자는 본체의 부속물인데, 인간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 어두운 생각과 마음을 상징하한다고 생각한다. “머리 위에 접시를 얹고 있을 땐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 편이 좋다”는 문지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림자를 데리고 도시에 살 수 없으므로 그림자를 떼어내야 한다는 취지인데, 접시는 그림자고 하늘은 도시를 뜻하는 것일까. 아델베르트 폰 사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떠오른다. 그림자를 팔고 금화가 쏟아지는 자루를 넘겨받은 남자 페터 슐레밀은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그림자를 팔고 빛을 잃었다.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 그림자는 빛의 존재증거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혹은 국가)는 늘 그림자를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를 마주볼 수 있는 용기와 인지적 공감능력을 길러야 본체를 잃지 않는다. 

     

  도시 속 짐승과 사물들은 그림자가 있는데 오직 인간만 그림자가 없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림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도시 속에 갇힘으로써 잃어버린 인간 고유한 특성일까. 이를테면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 연민······ 그리고 꿈, 사랑”(178쪽)같은. 

     

  그림자는 도시와 바깥의 중간지점에 산다. 도시 안이 상상계라면 그 바깥 세계는 실재계이고 그림자는 꿈처럼 반무의식의 상징계를 의미한다. ‘나’의 그림자는 죽어가는 생명처럼 말한다. “여기 있는 그녀가 그림자고 벽 바깥에 있던 그녀가 본체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중략) 실은 이곳이 그림자의 나라가 아닐까. 그림자들이 모여 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서로 도와가며 숨죽이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176쪽) 

     

  그림자를 버린 자만 이 도시에 거주할 수 있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문장들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지금 여기의 ‘나’가 실은 그림자이고, 거기의 ‘나’가 진짜 ‘나’일수도 있다는 것. 육체와 영혼, 몸과 마음, 껍데기와 알맹이, 현실과 꿈, 고유의 역할과 사회적 역할 등이 대립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본체와 그림자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표리일체다. 손이 나의 자아라면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게 손을 펴고 악수를 청할 수 있고, 주먹을 쥐고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 둘 다 손이 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도서관’을 보자. 현실과 가상 세계에 모두 등장하는 공간이다. 실제 세계에서 중년의 ‘나’는 산골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부임한다. 전임 관장인 고야쓰는 트럭 사고로 아들을 잃고, 사랑하는 부인도 강에 몸을 던졌다. 본인 또한 산책 도중에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는 인간”이자 유령으로 ‘나’ 앞에 나타나 도서관 안쪽 장작 난로가 있는 정사각형 방에서 대화를 한다. 한편 도시에도 도서관이 있다. 나는 눈에 상처를 낸 “꿈 읽는 이”의 자격으로 오래된 책상에 앉아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다.  

     

  도서관의 서고에는 책 대신 ‘오래된 꿈’이 수납되어 있다. ‘오래된 꿈’이 그림자의 말처럼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177쪽)나 “긁어내어져 밀폐 보존된 사람들 마음의 잔재”(186쪽)이라면 도서관은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경전을 읽는 신전이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처럼 각각의 마음은 하나의 소우주이고 “궁극의 개인 도서관”(557쪽)이다. 도서관은 한 점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팽창하는 드넓은 마음들의 총체다. 도서관에서 읽는 대상은 책이나 ‘오래된 꿈’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도서관에서 자신의 내면을 읽는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고요하고 고독한 작업이다. 

     

  ‘나’는 고야쓰를 대신해 도서관장이 되었고 비범한 소년은 나의 후임자로서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일을 계속한다. 고야쓰, ‘나’, 소년의 순서로 ‘계승’의 바통이 현실의 도서관 안쪽 정사각형 방과 “의식의 깊은 밑바닥에 있는 작은 정사각형 방”(747쪽)으로 건네지는 구조다. 하루키의 아버지가 난징 대학살(1937년) 무렵 중국에서 종군했고 그 때의 참상을 전해들은 하루키도 유사 체험과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비롯한 하루키의 작품에 군인 장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아버지의 경험의 ‘계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인삼각으로 벽 통과하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