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와 조선일보
아버지는 1980년에 마산에서 직장을 구했다. 해태제과에서 낸 운전기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해태가 딴 데 보다 월급이 많았지. 보너스도 마이 준다 하고.” 아버지는 십오 년을 해태제과 소속 운전기사로 일했다. 유년 시절 나는 냉동 탑차 조수석에 앉아 주말이면 경남 전역의 대리점을 돌아다녔다. 아버지가 아이스크림 박스를 상하차하는 일을 돕곤 했다. 아빠 일하는 데 따라온 착한 아들이라며 아저씨들로부터 용돈을 받고 공짜 아이스크림도 많이 얻어먹었다. 사실 그 재미가 더 쏠쏠했다. 여름마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쟁여놓고 하루에 서너 개씩 꺼내 먹었다. 80년대, 90년대는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라 가을이면 해태제과 종합선물세트를 받아서 신났고 우승 기념구와 선동열 유니폼과 모자도 얻을 수 있었다. 반면에 나는 월드콘과 스크류바를 포기해야 했다. 늘 부라보콘과 바밤바를 먹었다. 아빠는 내가 슈퍼에서 빵빠레를 집으면 “아이스크림은 해태가 더 맛있다.”며 내 손을 잡아끌고 해태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는 가게만 갔다. 비극은 그 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열에 아홉은 롯데 팬이었던지라 나는 대놓고 해태를 응원할 수 없었다. 이곳은 마산이었으므로.
▶ 중앙초등학교 35회 졸업 동기 박한우에게 ‘교련선생 한 놈이 조선일보만 본다고 박선생 흉을 보’면서도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다아.”(47쪽)
▶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웠지만 정작 자신은 노동과 친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노동은 혁명보다 고통스러웠다.(67쪽)
운전 노동자로 살아온 아버지는 조선일보를 열독했다. 선거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투표장에 가서 보수우파 후보에 투표했다. 경남에서 창원은 그나마 지역 색이 옅은 편이고 노동자가 많이 사는 곳이다. 아버지가 눈 뜨고 가장 먼저 마당에 던져진 조선일보(배달이 늦다는 핑계로 가끔 중앙이나 동아로 갈아타긴 했지만)를 가져와 펼쳤다. 그래서 나도 조선일보를 어릴 적부터 읽었다. 물론 재미없는 정치면, 사회면은 건너뛰고(가끔 만물상과 이규태 칼럼을 읽었다)스포츠 면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곤 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다른 분야도 스포츠처럼 그래 파고들면 서울대는 따 논 당상이네.”라며 핀잔을 줬다. 아버지는 9시 뉴스를 보면서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종북’이라 ‘빨갱이’라 칭하기도 하고 남북 간의 대화나 교류협력 사업을 퍼주기로 단정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두 개가 담긴 보자기를 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마산에 사는 해태 팬으로서, 배차 차장이 전횡을 일삼는다며 분개하면서도 조선일보를 열독하는 노동자의 모순과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이 속한 계급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계급배반투표’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 가난한 노동자가 재벌이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에 투표할까? 나의 오랜 의문이다. “영호남 지역감정,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언론 환경, 자본주의 옹호 일변도인 제도권 교육, 정치 세력과 정당에 대한 정보와 이해 부족, 보수적인 종교계가 신도에게 미치는 영향, 낙선이 예상되는 후보에 대한 지지를 꺼리는 사표 심리, 부족한 자존감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 우월해 보이는 대상을 자신과 심리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라는 분석(주2)과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때문이라는 의견(주3)도 있다.
자료를 찾아보고 오랜 기간 생각해 보아도 인지 부조화의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해부족, 종교적 영향, 사표 심리, 자존감 부족처럼 계량할 수 없는 것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보다는 차라리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적으로 기본값이 보수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말한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주4)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경계하고 환경적 변화에 대해 방어기제가 즉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오랜 기간 지구에서 생존과 번식해 온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적 본능이다. 유년 시절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새겨진 정보가 오랜 시간 교육에 의해 고착화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 한 번 형성된 뇌세포의 연결구조가 쉽게 바뀔 수 없다. “당신이 틀렸어.” 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사람의 본성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주2)임승수,『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수오서재, 2023, 122-123쪽
주3) 최종회, 『대구경북의 사회학』(오월의 봄, 2020)에서는 표본을 50대와 60대 초반의 대구, 경북 출신의 남녀로 설정하고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주4) “일체의 에너지를 일상적인 생존투쟁에 쏟아 부어야 하는 절대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 우물이 있는 집, 2020, 250쪽